[엄상익의 시선] 가수 김세환님 부부께 드리는 감사인사
바닷가에 한차례 비가 뿌렸다. 비 온 뒤의 고즈넉한 저녁 분위기가 거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기 위해 뒷골목의 찌개집으로 들어섰다. 칠십대초쯤의 여성 혼자서 꾸려가는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메뉴가 간단했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끓인 김치찌개의 진한 국물에서 깊은 맛이 났다. 식당 주인이 밑반찬을 가지고 와서 식탁 위에 놓고 갈 때였다.
“고맙습니다. 이 집은 반찬들도 맛이 있어요”
내가 인사를 했다. 순간 주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요즈음 식당에 가면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을 간단히 칭찬해 준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행복해지는 것 같고 나는 좋은 음식을 먹게 된다. 너무 쉬운 일인데 젊어서는 실행을 하지 못했었다.
몇 명의 청년들이 들어와 내 옆의 탁자에 앉았다. 모두 밝고 착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또 다른 한 팀이 음식점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 든 주인 혼자서 찌개를 끓이고 밥을 하고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들어온 팀의 젊은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라고 말했다. 착한 여성 같았다.
나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젊은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젊은 시절 삶은 뭘까?하고 고민을 하면서 고향으로 가려고 역으로 갔대. 그런데 매점 앞에 ‘삶은 달걀’이라고 적혀 있더라는 거야.”
별로 반응이 없었다. 말을 한 청년이 덧붙였다.
“책에서 봤는데 이거 너무 낡은 버전인가 봐”
그 때 주인 여자가 작은 무쇠솥에 수북이 담긴 하얀밥을 가지고 와 그들 식탁의 중간에 내려놓았다.
“와우”
김이 나는 먹음직 스런 하얀밥을 보는 순간 놀라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그렇게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 같았다. 주인 여자가 신이 나는 얼굴이었다. 손님들이 감사해 하고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주인 여자는 신이 나는 것 같았다. 갑질이 없이 서로서로 그렇게 감사하고 도와주면 세상이 천국으로 바뀌지 않을까.
밥을 다 먹고 음식값을 계산할 무렵이었다. 옆자리에 있던 청년들 중 한 사람이 조용히 내게 말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시는 엄 변호사님이시죠? 제가 댓글을 단 적이 있습니다. 밥값을 제가 몰래 냈습니다.”
나는 한적한 바닷가 도시의 골목에 나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감사하며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글을 쓰는 보상을 엉뚱한 곳에서 받은 것 같았다.
바닷가 나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 청년처럼 내가 감동을 받은 글이나 노래에 대해 감사의 행동을 했나 기억의 필름을 되돌려 보았다. 글로 내 영혼을 맑게 씻어준 법정 스님의 다비식 때 조계산으로 찾아갔었다. 타는 불꽃으로 남아있는 스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글을 읽고 정신적으로 성숙했다. 풍산 공원에 있던 그의 묘 앞에 꽃 한 송이를 가져다 바친 적이 있다. 내가 아직 인사를 못 드린 가수 한 분이 있다.
42년 전 무겁고 침울한 마음으로 부천의 지하도를 지날 때였다. 전파상의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감미로운 멜로디가 내 영혼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같았다. 믿음이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표현하기 어려운 강한 감동에 이끌려 그 전파상에 들어가 그 노래의 제목을 물었다. 가수 김세환씨가 부른 찬송가였다. 나는 그가 부른 찬송가 가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를 모두 샀다. 그 다음 날부터 밤이고 낮이고 공부를 하는 때면 그 찬송가 테이프를 내내 틀어놓았다. 그 해에 고시에 합격했다. 언젠가 우연히라도 레스트랑같은 곳에서 볼 기회가 있으면 은밀히 밥값을 대신 지불 하거나 포도주라도 선물로 보내고 싶었다.
유명연예인이라 나 같은 사람은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나중에 잡지를 통해 보니까 그 부인도 내게는 고마운 분이다. 대학입시를 치르고 내가 아르바이트로 책 외판원을 할 때 철학책 한 권을 사준 분인 것 같았다. 자기가 필요하지도 않은 데 그냥 사주는 착한 마음을 느끼면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었다. 앞으로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다. 이렇게 글로 마음을 대신 남겨둘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