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광우병 사태’ 당시 검찰 단면…”사냥개는 여우를 잡지 못했다”
변호사를 하면 우연히 역사적인 사건의 한 부분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수가 있다. 아주 작은 퍼즐 조각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중에 그 사건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완성을 위한 귀중한 부분일 것이다. 그 기억이 사위어지거나 바래지면서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게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의 변호사 수첩에는 광우병 사태 당시 검찰 내부 모습이 적혀있다. 정권과 반대 세력이 부딪쳐 불꽃을 일으켰을 때 사냥개 역할을 하는 검찰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그 내면에 관한 기록이다. 그걸 다시 들추어 봤다.
2009년 3월 2일경이다. 아침 신문에 MBC방송국의 피디수첩에서 방영한 광우병 관한 검찰수사의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관련자들을 소환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겠다는 예고였다. 서울중앙지검은 피디수첩 프로그램을 만들 때 번역을 했던 사람과 소고기 협상 대표 그리고 육류수입업체 사장을 불러 조사했다고 했다.
검찰은 방송 번역가로부터 “제작진이 기획 의도에 따라 번역을 왜곡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소고기 협상대표와 육류 수입업체 대표한테서도 방송제작진의 처벌을 원한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검찰은 농수산식품부 장관을 조사한 후 피디수첩 제작진에 대한 소환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었다.
보도 내용을 보면서 나는 정권이 단단히 칼을 빼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방송을 보았다. 과장이나 사실왜곡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나 신문은 항상 그런 면이 있었다. 문제는 그 방송에 선동이 된 사람들이 광장으로 뛰쳐나와 미쳐 날뛰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이면에는 정치의 복잡한 상황들이 있는 것 같았다.
문득 한 우화가 생각났다. 도토리 한 알이 소리를 내며 땅에 툭 떨어졌다. 잠자던 토끼가 그 소리에 놀라서 뛰기 시작했다. 그걸 본 양 떼가 따라서 뛰고 불안감이 전달된 코끼리 떼도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평화롭던 초원이 혼란과 공포에 빠졌다.
광우병에 관한 과장된 방송이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증폭되는 과정이 우화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국가가 흔들리고, 내각이 무너진 결과는 만만치 않았다. 그 가운데 검찰이 범인들을 잡으려고 사냥을 시작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방송프로그램 제작진이었던 것 같다. 언론은 농수산식품부의 의뢰로 수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검찰이 직접 하면 될 텐데 항상 누군가의 고소나 고발로 시작하는 것 같았다. 피디수첩 제작진은 검찰의 소환에 불응했다. 엉뚱한 상황이 벌어졌다. 수사담당자가 지휘부와 수시로 마찰을 빚고 갈등을 겪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수사를 담당한 부장검사가 피디수첩의 보도는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사직했다. 죄가 안 되는 데도 압력을 행사한 지휘부에 항의해서 사표를 낸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 무렵 나는 농수산식품부 장관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었다. 검찰의 소환을 받은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검찰은 내가 꼭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해야 한답니다. 그렇게 해야 피디수첩 제작진 외에 작가나 국장들도 조사할 수 있다는군요. 내가 주변의 친한 법률가들한테 다 물어봤어요. 소고기 협상대표였던 차관은 방송을 통해 온갖 욕을 먹고 모함을 당했지만 장관인 저는 명예훼손을 당한 게 없다고 그러더라구요. 모두 다 나 보고 고소하지 말래요. 검찰이 상대방을 이겨내지 못하고 불기소를 하거나 법원에서 무죄가 나오면 나만 두번 죽는 거라고 말이죠. 도대체 나는 검찰을 이해할 수 없어요. 피디수첩 방송의 문제는 내 개인의 명예훼손이 아니라 정권과 좌익의 싸움인데 왜 그걸 정면으로 법적 문제로 삼지 않는지 몰라요. 답답해요.”
나도 장관과 같은 생각이었다. 장관은 검찰 소환 때 나 보고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그 며칠 후 수사책임자인 담당 부장검사실에 나는 장관과 함께 있었다.
부장검사가 입을 열었다. “검사 생활을 하다 보면 모략을 당하기도 하고 고소를 당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한 사건 때문에 민노총 계시판에 검사들의 욕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모릅니다. 우리 검찰은 이제 수사를 하기도 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해서 배상금을 물게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그들의 모략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치니까요.” 농림부 장관의 고소를 유도하는 말이었다.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형식논리에 밀려서 큰 걸 놓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죠. 촛불 정국은 MBC의 거짓 선동 때문에 대통령까지 억울하게 사과한, 국기가 흔들린 큰 사건입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죄로 축소되는지 그런 법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난번 수사 당시 담당 부장검사와 지휘부 간에 알력과 마찰이 있었던 걸로 세간에 알려졌는데 재수사 하는 배경은 뭡니까? 저의 개인적인 고소가 필요한 진짜 이유가 뭐냐구요? 이 문제는 이미 다 사그라들고 재가 된 상태입니다. 광우병 사태가 제 개인의 고소 문제로 부각되면 장관에서 쫓겨난 사람의 옹졸한 행동이 되고 맙니다.”
“고소가 필요한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다른 데 있습니다. 지금 사회단체에서 왜 검찰이 개인적인 장관이나 소고기 협상대표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수사하느냐고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검찰로서는 수사의 공정성에 딴지가 걸리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 시비를 없애기 위해 고소장 제출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도대체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주변에서 변죽을 울리는 게 불만입니다. 이건 대통령이 거짓말 앞에 고개를 숙인 사건입니다.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기가 그렇게 힘든 겁니까?”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의 방영 내용의 허위성에 대해서 법원에서 명확한 판결이 선고됐습니다. 남은 건 장관님과 소고기 협상 대표의 명예훼손이 되느냐 안되느냐입니다. 그래서 장관님의 개인적인 고소가 필요한 겁니다. 지휘부에서 저에게 전혀 관여를 하지 않을 테니 있는 그대로 한번 조사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검찰의 허약성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세력이 네트워크가 되어 군중을 동원하고 있었다. 광장에 백만명만 채우면 정권을 뒤집을 수 있다는 그들의 소리를 내가 직접 들었다. 검찰은 그들을 잡을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았다. 예상대로였다. 검찰은 노조에 밀려 압수수색을 하지 못했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그들의 입을 열지 못했다. 법정에서 그들은 검사들을 조롱했다. 최후 선고에서도 참패를 당했다.
나는 <월간조선>에 관전평을 썼다. 사냥개는 결코 여우를 잡을 수 없다고. 개는 주인의 눈치를 보고 따라가지만 여우는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 때문에. 검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알아서 하라고 대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