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나만의 색깔 가진 노년, 괜찮지 않은가?”
몇 년 전 동해역이 배경 중 하나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동해역에서 기차를 탄 주인공 눈을 통해 보인 스산한 겨울바다가 묘사되어 있다. 날이 선 시퍼런 겨울바다 위에 바람이 불고 있었다. 물결이 차다고 했다. 적막하고 고독한 그 광경의 애수가 내 가슴 속으로 시리게 스며들었다. 어떤 글을 읽고 실제로 그 장소에 가서 거닐어 보는 것도 나름의 색깔을 가진 취미가 아닐까.
얼마 전 땅거미가 질 무렵 동해역 부근 뒷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그곳은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일제시대 지어진 집들이 백년 세월의 풍화 속에서 아직도 버티며 여기저기 웅크리고 있었다. 부스러져 내리는 기와나 그걸 받치고 있는 가느다란 나무 기둥이 힘겹게 보였다. 어둠 속에서 침묵하고 있는 집들은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둠 속으로 서서히 지워져 가는 뒷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골목길 안쪽에 희미하게 빛이 흘러나오는 작은 주점이 보였다. 그걸 보니까 깊숙이 묻혀있던 어린 시절 추억 한 토막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나는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들고 술을 받으러 동네 주점으로 갔었다. 아버지 심부름이었다. 얇은 유리창에 빨간 페인트로 ‘왕대포’라고 쓰여진 나무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은 술을 주면서 아버지한테 외상값 달라고 전하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주전자 코를 막은 종이를 빼고 한 모금씩 마셔봤다. 그렇게 맛없는 술을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해역 뒷골목 주점은 60년 전 내가 살던 신설동 풍경과 질감이 비슷했다. 주점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노란 불빛이 주위 어둠을 녹이고 있었다. 지나간 시간 속의 그런 풍경들이 그리워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어제 점심 때 망상해변에서 내가 ‘옥계 신선’이라고 부르는 80대 노인을 만나 밥을 같이 먹었다.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노년의 친구라고 할까. 그는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옥계 바닷가 작은 정원이 있는 집을 사서 ‘무율제’라는 이름을 짓고 살고 있다. 안개가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조선시대 정철이 이 지역을 돌아다니며 관동별곡을 썼잖아요? 그걸 공감하려고 정철이 들렀던 청간정과 의상대 그리고 경포대, 죽서루, 망향정, 월송정을 찾아갔었죠. 그 장소에서 어떤 작품이 탄생했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죠. 그게 의미를 알고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요.”
그는 나보다 한 차원 높은 시간과 공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은행을 다니다 몇년 일찍 퇴직하고 바닷가 도시로 왔다는 그는 세상의 시선이나 비교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사람은 각자 하나님한테서 선물 받은 인생을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재미있게 즐겁게 살다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생활에 필요한 돈은 살아보니까 얼마 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요즈음 바닷가 도시로 와서 인생의 여백을 다채로운 색깔로 채우는 노인들을 눈여겨 본다. 무엇이 삶에 즐거움을 주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지난 여름 내가 사는 집 앞 해변에도 한 달간이나 텐트를 치고 혼자 살다가 간 노인이 있다. 그는 파도가 어둠을 때리는 밤에 혼자 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 바닷가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는 노인도 봤다. 노년의 음악은 즐거움을 주는 것 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어제는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동해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는 재미있는 놀이가 너무 많아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는 다시 치기 시작한 당구 실력이 복원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은 젊은 날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면서 당구장에서 보내기도 했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번 친구들과 만나 마작도 한다고 했다. 오락잡기에 빠지는 것도 재미있는 인생이 아닐까. 프로 바둑기사를 만났던 적이 있다. 어려서 바둑에 재미를 붙였는데 바둑을 두면서 인생이 다 갔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고 산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노년에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하는 친구도 있다.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늙어서 첼로와 희랍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노년을 오락 잡기보다는 신에게 바쳐야 한다면서 경전을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데 전화가 왔다. 고위 공직자로 있던 후배였다.
“이틀간 밤을 새면서 동영상을 만들었어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겸손을 가르치려고 형님 글과 사진을 인용했어요. 유튜브에 올린 후 보내 드릴께요.”
노년에 좋은 유튜버나 블로거가 되는 것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삶인 것 같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노년 괜찮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