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죽음학자 최준식 교수에 묻다 “사후 세계 있습니까?”
나는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다. 나이를 먹어가니까 더 궁금해진다. 나의 영이 이 세상으로 여행 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면 마음이 편하고 푸근해 질 것 같다. 그러다가도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라고 하면 허망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하기야 내가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고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면 손해볼 것도 없지만 말이다.
죽음을 설명하는 이화여대 최준식 명예교수의 방송 화면을 여러 번 봤다. 그가 전공이라는 ‘죽음학’은 내게 생소하다. 죽어보지 않은 그가 죽음을 말하는 걸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의문이었다. 아무튼 그는 죽음에 관한 책과 논문을 많이 읽은 것 같다. 그의 강연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사람이 죽어서 뇌가 정지되도 자기가 죽은 것을 아는 의식이 남아 있어요. 그런 우리의 의식은 뇌사상태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거죠. 비유하자면 텔레비전 수상기가 없어져도 프로그램은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수상기를 바꿔서 볼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물속 깊이 들어갈 때 잠수복이 필요한 것처럼 지구에서 필요한 옷이 우리의 몸이 아닐까요?”
적절한 비유같다. 그러면 본체인 의식이나 영이란 무엇일까. 그는 영의 세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영의 세계에서는 뭔가를 생각하는 순간 그게 현실로 나타나죠. 똑같은 주파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생전에 사기치고 싸우던 사람들은 영의 세계에서도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요. 그곳은 메타버스의 세계와 비슷해요. 생각하는 순간 그대로 나타나는 거죠. 건물도 집도 나타나구요.”
정말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세상이 있을까. 예수는 모든 말을 내세를 전제로 하고 얘기했다. 그가 말하는 하늘나라는 영의 세계인 것 같다. 커튼 한 장 사이에 있는 저쪽세계를 인간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걸 믿고 싶다. 그곳에 먼저 가 계시는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를 만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나는 저 세상으로 옮겨가 새로운 삶을 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재물과 지위가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원인을 알 수 없던 고난의 터널도 별로 문제가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인생이라는 책의 후반부인 죽음 건너편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수시로 누군가에게 확인하고 위로 받고 싶은 심정이다. 공허와 의심이 배어있기 때문일까.
어떤 사람에게 호기심이 일어나면 나는 그 사람을 찾아가 만나곤 했다. 남에게 밥을 살 수 있는 약간의 여유만 있다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진리 한 조각이라도 건지는 게 큰 이익이라는 생각이다. 서울의 모처에 있는 죽음학을 연구한다는 최준식 교수의 개인연구실을 찾아갔다. 처음보는 사람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참 좁은 사회다. 인맥이다 학연의 지도를 펼치면 연결이 되는 구조다. 그의 연구실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으로 감자탕과 맥주를 시켜놓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음의 빗장을 풀고 내가 물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확신합니까?”
“이미 수많은 논문이 나왔고 증명이 됐는데 그걸 믿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해요. 왜 따지고 의심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성경 속의 수 많은 순교자들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넘어다 보고 험악한 죽음들을 선택했다. 사도 바울은 죽음 이후의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크리스찬 같은 사람들이 가장 비참한 존재일 것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빨리 가고 싶은데 할 일이 남아 있어 이 세상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존재들이 세상에 남아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는 것 같다. 죽음학의 최준식 교수는 “일등석에 타고 갈 사람이 화물칸을 타고 고생하면서 가는 걸 생각 해보세요. 부처가 살아서 가르칠 때 그런 거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준식 교수와 나는 죽음의 이쪽에 있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얘기하기도 했다. 최준식 교수는 내게 조금은 엉뚱한 이런 말을 던졌다.
“저는 악마 같은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보면 왜 저런 걸 하나? 하고 걱정이 됩니다. 사람을 죽이고 피를 보고 하는 과정에서 나쁜 기운을 끌어들이기 때문이죠. 연기에 몰입하는 순간 그 영혼이 나쁜 쪽의 주파수에 맞춰지는 거죠. 운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현실이 아닌 연기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말이죠 이 세상에 살면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좋은 일을 하면 그런 것들이 나중에 엄청난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게 영혼세계의 법칙이죠.”
그래서 예수는 목마른 이웃에게 냉수 한 잔이라고 주라고 했나 보다. 저녁을 먹고 최교수의 연구실에 다시 가서 그가 치는 기타 연주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밤늦게 헤어졌다. 이렇게 잠시 스쳐가는 인연도 괜찮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