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그때나 지금이나 남의 입 틀어막으려는 세력들
오늘자 <조선일보>에 난 작은 칼럼이 눈에 들어왔다. 역사교과서 집필자가 고통을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그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자로서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입장에서 교과서 내용을 썼다고 했다. 일부 좌파 언론이 그런 자신을 친일파이고 뉴라이트라고 분류하면서 악마화한다는 사연이다.
나는 2000년대 초반 친일파를 다시 색출하려고 만들어진 위원회와 싸운 적이 있다. 일제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김동인의 죽은 영혼을 대리해서였다.
위원회의 역사학자들은 나를 무시했다. 오기가 난 나는 10여년 동안 고시를 준비하듯 일제시대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들과 법정 논쟁을 벌였다. 오늘은 당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이던 역사학자 이명희 교수와 대화를 나누었던 내용을 말하려고 한다. 그는 달랐다. 위원회의 미운오리새끼 같은 입장이었다고 할까.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친일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2년을 보냈습니다. 심의 때마다 불쾌하고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그대로 있다가는 영원히 매도될 것 같아 제 의견을 분명히 남기고 싶어 만나 뵙자고 한 겁니다.”
그는 내가 그의 증인이 되게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먼저 기각당한 행정심판 과정을 물었다. 그들은 모든 절차를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었다.
“당사자들의 항변은 아무 의미가 없고 그냥 기각이예요. 몇 분도 걸리지 않아요. 좌파 위원들은 독립운동이나 혁명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친일파라고 생각하니까요. 제가 보기에는 친일파로 찍힌 사람들도 문제가 있어요. 그 당시 시대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느니 먹고 살기 위해 그랬다느니 변명조입니다. 당당히 역사 앞에 맞서지 않고 비굴하니까 밟히는 거죠.”
“그렇다면 본인의 역사관은 어떤 건가요?”
나는 이명희 교수의 의식을 알고 싶었다.
“좌파 위원들은 태평양전쟁에 동조한 사람들을 무조건 친일파로 몰아부칩니다. 역사학자인 제 입장으로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1차대전부터 전쟁은 군인만 하는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동원되는 총력전이죠. 거기다 식민지까지 동원됐습니다. 영국은 인도가 돕고, 프랑스는 알제리가 일체가 되어 싸웠습니다. 식민지가 그 댓가로 얻는 것은 참정권과 자치권이었죠. 단순하게 전쟁에 찬성했다고 친일파로 단죄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시대를 살던 분들도 생각이 있는 겁니다. 이광수나 최남선 같은 분은 나름대로 확신을 가진 분이었죠. 그 분들이 다시 살아나서 지금 말한다고 해도 그 확신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순간적으로 일제에 아부하기 위해 말하는 그런 분들이 아니니까요. 역사 지식이 부족한 일반 국민은 얼핏 일본의 전쟁에 찬성했다면 친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외형적인 기준으로 그 자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말에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덧붙였다.
“총력전 상태에서 일본은 전쟁에 30만명의 중국인을 동원했죠. 그 중국인들은 어떤 사상을 가지고 한 게 아니라 임금을 준다고 하니까 간 거죠. 우리의 징용도 그냥 끌고 가서 착취를 한 건 아닙니다. 전쟁에 나간 징병이나 지원병도 모두 총알받이가 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친일반민족행위를 심사할 때 보면 일괄적으로 친일파를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면 국방헌금은 십만원 이상이면 친일파다 그런 식이죠. 자진해서 낸 것이냐, 강요받고 어쩔 수 없이 낸 것이냐를 따지지 않아요. 일제시대 후반에 친일파가 된 사람들은 전부 억울할 겁니다. 대부분이 지식인이나 문화인 종교인이죠. 솔직히 음악가 안익태 선생이 무슨 친일의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저도 역사를 공부했고 위원으로 있지만 이해할 수 없어요. 그동안 선고된 판결을 보면 판사들조차도 좌파 입장에서 일괄적으로 처리하니까 문제죠. 친일파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비겁하게 움츠러들지 말고 싸워야 할 겁니다.”
그는 소신이 분명하고 용기있는 사람 같았다.
“지금 말한 걸 공개법정에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양심선언을 하겠느냐는 얘기였다.
“하죠, 진실을 말하는데 무슨 주저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법정에서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그 영혼이 피를 흘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세력이 있다. 자기의 신념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