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일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는 삶

양궁 사브르 대표팀의 최세빈(왼쪽)이 윤지수와 3일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열린 4강 프랑스전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리고…외국인이 탄복하게 된 나라 대한민국

8월의 하얀 태양이 세상을 원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파란 바다 위에 몇 척의 화물선이 풍경화처럼 고요하게 떠 있고 하얀 구름이 수평선에서 피어오른다. 노란 모래사장으로 눈부신 하얀 파도가 조용히 밀려오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파라솔 아래서 해수욕을 온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고 있다. 러시아에서 일을 찾아온 듯한 이방인들이 떨어져 누운 채 햇볕을 쪼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해의 여름 풍경이다.

점심 무렵 해안로에 있는 막국수 파는 식당으로 갔다. 내가 자리잡고 앉은 탁자 옆에서 작업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국수를 먹고 있다. 먼지 낀 얼굴이 일을 하다가 온 것 같았다. 그중 한 명이 나를 보더니 아는 체 눈인사를 했다. 아는 사람이었다. 두달 전쯤 우리 집에 와서 일했던 사람이다. 그는 수도도 고치고 전기도 고치고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내게 자기가 색소폰을 연주하는 뮤지션이라고 자랑했다. 그가 자기 맞은편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동료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친구하고 같이 에어컨 설치를 하다가 왔어요. 이 친구도 음악을 해요. 전자기타를 하죠.”

얼핏 보니까 약간 투박한 인상이었다.

“노동을 하면서 음악을 하고 멋있게들 하시네요”

내가 칭찬해 주었다. 그가 갑자기 스마트 폰에서 한 영상을 재생시키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상당한 수준의 색소폰 연주 장면이다.

바닷가 도시에 3년째 살면서 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곤 한다. 일과 즐거움을 적당히 배합해 사는 삶이라고 할까. 일을 해서 먹을 것을 벌고, 나머지 시간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이다.

이 도시에서 내가 두 달 다닌 드럼학원의 60대 중반쯤의 선생은 다가구주택에서 혼자 산다고 했다. 동해 바닷가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 하면서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CD 2백장을 판 날도 있었다고 하면서 행복해 했다. 그는 원래 직업은 통신기술자였다며 틈틈이 즐기던 기타와 드럼이 늙어서는 밥이 된다고 했다. 그는 피아노와 첼로도 배웠다고 했다. 학원 벽에는 그가 그린 기타를 치는 그의 모습을 그린 작은 그림이 걸려 있다.

손자를 데리고 단골인 중국음식점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창밖으로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이 보이고 한쪽에는 묵호등대의 불빛이 명멸하는 밤이었다. 마음이 넉넉한 음식점 주인이 서비스로 군만두를 가져다 주었다. 회사에서 퇴직하고 동해로 내려와 중국음식점을 하는 그는 목공이 취미라고 했다. 나무 의자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님이 드럼을 배우시니까 제가 동해의 젊은 가스펠 연주팀을 소개해 드릴까요?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연주를 해주는 젊은이들이예요.”

그런 활동도 좋은 봉사이고 즐거움일 것 같다. 음악은 삶에 아름다운 색깔을 부여하는 것 같다.

나는 대한민국의 바닷가에 있는 지방 도시에 와서 일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만하면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된 게 아닐까.

며칠 전 놀러 왔던 친구의 입을 통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를 새삼 느꼈다. 그 친구는 공과대학 교수인 동시에 한국에 유학을 온 각국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목사이기도 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한국 정부가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에서 똑똑한 아이들을 불러다가 장학금을 줘서 공부시키고 있어요. 모두 앞으로 자기 나라에서 큰 일을 할 아이들이죠. 얼마 전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요. 한 청년이 지갑을 주워서 가지고 있다가 내게 전해 준 거야. 내가 고마워서 사례비를 주려고 하니까 그 청년이 사양하는 거야. 같이 있던 외국 유학생들이 그 광경을 보면서 탄복을 하는 거야. 한국이 이런 나라냐고. 자기 나라 같으면 하나님이 준 선물로 생각하고 주운 그 지갑을 당연히 가진다는 거지.”

해변에 비싼 스마트 폰이 벤치에 놓여 있어도, 아무도 없는 텐트 안에 지갑을 놓아두어도 아무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다. 그런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 중 상위권에 속해 있다는 뉴스를 봤다. 미국은 그 안에 없었다. 우리 세대는 소년 시절 꿈꾸던 나라를 노년에 본 것 같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