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일본함대가 캘리포니아를 점령했다”

신동아 창간호, 1931년 11월 첫 호를 냈다.


“미국 시장이 우리의 젖줄이기는 하지만 일본과 중국과도 경제적으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것 아닐까?”

 
일본함대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의 군항 샌디에이고를 향하고 있었다. 일본함대는 단번에 샌디에이고를 파괴해 버렸다. 필리핀이나 괌, 하와이 등 태평양 상의 주요지역은 이미 일장기가 휘날리고 미국의 태평양함대가 궤멸 됐다. 일본군을 실은 대함대와 운송선이 미국 본토 근처에 와서 종적이 묘연했다. 미국 전역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일본의 함대가 캘리포니아주를 점령했다. 일본의 캘리포니아 총독이 임명됐다. 미국인의 코가 납작하게 됐다.

1933년 5월호 <신동아>는 태평양전쟁을 예상하는 여러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일본 주재 미국대사관에 서 무관으로 근무했던 엘리어트가 미국잡지 <아워 네비>에 기고한 소설의 내용이다. 미국 무관은 그 시절 미국의 해군 확장을 목적으로 그 소설을 썼다고 했다.

잡지 <신동아>는 일본인 작가의 ‘태평양전쟁예측기’도 동시에 소개하고 있다. 그 대강의 내용은 이랬다.

하와이 정찰을 마치고 마샬군도로 돌아가던 일본 순양함이 미국의 잠수함과 만나 전투가 개시됐다. 그걸 계기로 미국와 일본의 전쟁이 시작됐다. 일본은 미국의 중요해군기지인 괌과 필리핀을 먼저 점령한다. 일본에 위협을 가하는 미국의 기지였기 때문이다. 이윽고 태평양의 대해전이 시작된다. 미국의 연합함대 사령관이 2백여척의 함대와 항공대를 이끌고 태평양을 넘어온다. 미드웨이를 지나 일본 본토를 공습할 예정이다. 동경만에서 두 나라 주력함의 포가 불을 뿜고 전투기들이 맞붙는다.

그 글을 쓴 일본 작가는 만주와 몽고를 확보하면 한번 해볼만한 전쟁이라고 하고 있다. 미국이 영국과 동맹을 하지 않는다면 미국 단독으로 일본에 승리를 하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었다.

그 6년 후에 실제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그 시절 미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930년대의 시사잡지 ‘신동아’를 통해 나타난 일본의 경제력은 만만하지 않았다. 미국의 시장을 잠식당한 미국의 면방직 업자들은 일본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해 달라고 아우성쳤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은 본토와 전 세계에 걸친 식민지에서 일본제품의 수입을 제한했다. 영국은 인도의 값싼 노동력으로 면제품을 생산했다. 그에 대응한 일본은 만주의 싼 임금으로 면제품을 만들었다. 일본과 영국 둘 다 값싼 노동력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승부는 기술에 있었다. 일본의 기술력은 영국을 앞서고 있었다.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나 캐나다에서 일본제품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의회는 관세법안을 통과시켜 일본상품의 수입을 제한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미국 영국과 무역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일본의 만주 점령을 놓고 잡지는 미국 <뉴욕타임즈>의 논평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만주침략행동은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일본이 영토침략의 죄를 범했다고 평가하면서 소련, 중국, 미국이 일본을 포위하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 시절 신동아의 기사 중 ‘만몽의 산업’이라는 기고문이 있다. 만주와 몽고는 일본의 생명선이라는 게 핵심내용이다. 일본의 인구문제와 식량문제 공업원료문제에서 만주와 몽고는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한동안 1930년대 동아일보에서 발간한 시사잡지 <신동아>를 열심히 읽었다. 그 시대의 시간과 공간 속을 살아간 사람들의 웃음과 울음소리 흐느낌과 외침들이 그 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해방 후 태어난 나는 항일저항정신을 배웠다. 미국의 시각에서 쓴 세상이 나의 정신을 지배했다. 1930년대의 시사잡지를 통해 일본의 시각을 뒤늦게나마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일본은 세계를 경제블럭으로 본 것 같았다. 아메리카 블록, 유럽블록에 맞서 일본은 아시아블록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다. 미국의 50주가 한편으로는 독립된 나라의 성질을 가진 것 같이 일본도 아시아연방국가를 만들려고 한 것 같다. 만주, 화북, 화남, 운남, 청해, 귀주, 신강을 합친 화서국, 안남국, 태국, 버마국, 말레이국, 필리핀국을 합쳐 연방체로 만들고 각 연방국에서 선출된 최고 대표들이 의회를 구성하려고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세계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로 경제블록이 나누어져 있다.

미국 시장이 우리의 젖줄이기는 하지만 일본과 중국과도 경제적으로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은 아닐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