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1940년 부산 ‘노다이 사건’을 아시나요?

노다이 사건 당시.사진

1940년 초 일본군 육군 대좌 노다이가 부산 제2상업학교에 부임해 왔다. 조선인 지원병제도가 성공하자 일제는 다음 단계로 각급학교에 현역 장교를 파견해 군사교육을 시행해 보기로 했다. 징병제를 앞둔 실험적 조치였다.

노다이 대좌는 인격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가 학생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일류인 부산중학교에 다니는 일본아이들을 보면 눈동자가 살아있는데 너희 조선 놈들을 보면 눈이 모두 풀어져 있단 말이야. 동태 눈깔같이.”

말끝마다 그런 식이었다. 그 말을 듣는 조선학생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쪽발이 대좌 새끼는 말끝마다 일본놈 조선놈을 구별해. 내선일체라 차별을 안하겠다고 했잖아?”

학생들이 자존심을 상한 채 중얼거렸다.

그해 11월 1일 경남지구 중등학교 군사 야외훈련이 있었다. 행군을 시작한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일본 아이들이 다니는 부산중학교는 경부가도를 따라 북상하는 편한 길이었다. 조선인이 다니는 부산 제2상고는 험한 길이었다. 훈련이 끝나고 부산공설운동장에서 부산중학교와 제2상고의 축구대회가 있었다. 노다이 대좌가 심판이었다. 경기를 보던 조선학생 한 명이 소리쳤다.

“저 일본 군바리새끼가 일본놈 학교만 편들고 우리 제2상고를 무시한다.”
조선인 학생들이 흥분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 새끼 죽여”

학생들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나오고 흥분한 조선인 학생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운동장에 있던 일본인들이 도망을 하자 조선인 학생들은 손에 돌과 몽둥이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영선 고개를 넘어 일본군 대좌의 집으로 몰려가며 소리쳤다.

“차별을 없애라. 조선독립만세”

어느새 그들은 시위대가 되고 대신동 전찻길 옆 일본인 상점들이 박살이 났다. 일본군 대좌의 집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고 미닫이며 장지문도 떨어져 나갔다. 그 시절 있었던 ‘노다이 사건’이었다.

그 8년전 1월 8일경이었다. 동경 경시청의 한 사무실에서 예심판사 아키야마가 이봉창 의사를 앞에 앉혀 놓고 신문을 하고 있었다. 이봉창은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조선인이었다. 조선독립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자백했다.

“왜 조선이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키야마 판사가 물었다.

“조선인 차별 때문에 울분을 느꼈습니다.”
“차별이라고 느낀 것들을 말해보라”
“열아홉살 때 용산역에서 노동을 했습니다. 나보다 1년 늦게 들어와 내게 일을 배우던 노동자가 얼마 안 있더니 내 상관이 됐습니다. 저는 그 밑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조선인이라는 차별이었습니다. 일본은 괜찮을까 해서 오오사카로 왔습니다. 겉으로 말들은 하지 않지만 조선인을 싫어하고 고용해 주지 않았습니다. 외판사원 모집광고를 보고 갔더니 신원증명서에서 내가 조선인이라는 걸 보고는 거절했습니다. 부두에서 석탄을 나를 때도, 철공소 직공을 할 때도 공사장 조장급 이상이 보증을 해 줘야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친했던 일본인 조장 야마노에게 보증을 부탁한 적이 있는데 ‘조선인을 보증서 줬다가 실패했다’며 거절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은 불결하다는 등 갖가지 나쁜 평판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인들이 그런 차별 대접을 받을 바에야 독립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그때부터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민족대표들이 재판을 받는 3.1운동 법정 안으로 들어가 본다.

“일본제국에 대한 불만이 뭔가?”
다찌가와 재판장이 민족대표인 최린에게 물었다.

“조선인을 차별하기 때문이오. 조선인은 4천년 역사를 가지고 독립된 언어와 글이 있는 문화인이요. 뒤떨어진 민족이 아니란 말이오.”

같이 재판을 받는 손병희는 이런 말을 했다.
“한일 병합을 하면 조선인이 일등 국민의 혜택을 누릴 줄 알았소. 그러나 돌아온 건 차별이오. 차별을 할 바에야 나라를 돌려줬으면 좋겠소.”

그 시절 일본인과의 차별을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조선인이라는 자각과 민족의 관념이 생긴 건 아니었을까. 조선의 양반과 노비는 같은 민족이라는 관념이 있었을까.

미국의 경우 한 지붕 아래 백인과 흑인 그리고 멕시칸 계통의 세 민족이 살고 있다. 인종차별을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 차별을 해서는 국가가 존립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는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 왔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 내면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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