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나는 마지막까지 선한 내용을 담은 작은 글을 쓰고 싶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대장간을 지키는 남자를 보았다. 벽의 회칠이 떨어져 나가 진흙의 속살이 보이는 오래된 작업장이었다. 쇠를 수없이 두드리고 갈고 또 갈아 하얀 빛이 반짝이는 생선회칼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전국에서 그를 찾아오는 일식당 주방장들의 칼을 수리해 주기도 했다. 칼을 만드는 데 일생을 건 사람 같다.
유튜브 장면에는 일본 장인들의 모습도 소개되고 있었다. 대나무를 쪼개 젓가락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나무토막을 잘라내 주걱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평생 목탁을 만들기도 하고 다다미를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일상에서 쓰는 보통의 물건들에도 장인들의 정성과 인생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왜 그 작은 일에 인생을 걸었을까.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더 돈을 벌고 대접받는 일로 옮겨가고 싶지는 않았을까.
짜장면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짜장면을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단순한 말이었지만 나는 감명을 받았다. 보통은 짜장면을 잘 만들면 중국음식점을 크게 하고 싶고, 그 다음은 사업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는 그냥 짜장면 하나만을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 한마디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나는 40년 가까이 변호사를 해왔다. 다른 직업에 거의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냥 괜찮은 변호사로 남고 싶었다.
직업 안에도 기능면에서 여러 분야가 있고 작업 공정도 나뉘어 있다. 그중에서 나는 작은 일 하나를 잡았다. 그 일만은 업계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게 뭘까. 원고지 10장 분량의 짧은 공간에 사건과 인생을 담는 일이었다. 나만의 색깔 있는 변론문이라고 할까. 원고지 10장 분량은 법관이나 일반인이 싫증을 덜 내고 읽어줄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 작은 그릇 안에 실속 있는 내용물을 담기 위해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벽이 뚫려야 했다. 귀가 뚫리고 눈이 뚫리고 마음이 뚫려야 했다. 그래야 보이고 들린다. 작은 그릇 안에 뜨거운 것을 넣어주기 위해서는 열중이 필요했다.
이웃에 살던 소설가가 있었다. 그의 집으로 가서 작업 과정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그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이 방에서 지난 3년간 꼼짝도 하지 않고 글을 썼어요. 아예 커튼을 치고 들어오는 햇빛까지 차단했죠.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어떤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죠. 만년필로 또박또박 원고를 써내려 갔어요. 두문불출하고 쓰는 순간은 너무 괴로웠어요. 우울증마저 오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작품이 완성되니까 남들은 도저히 모를 희열이 오더라구요. 나는 그게 구원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에게서 열중을 배웠다. 열중할 때 눈이 뚫리고 마음이 열려 완전의 세계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하는 일이 작을수록 완전의 세계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길가에 수줍게 핀 작은 제비꽃, 정원 꽃밭을 이리저리 나는 작은 나비, 맑은 샘물 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헤엄치는 피라미의 세계도 완벽한 우주다. 작은 일을 선택해서 잘하는 게 더 빨리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위대한 변론, 위대한 글은 그런 달란트를 가진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었다.
나이 칠십 고개를 넘으면서 환경과 일상의 패턴을 바꾸었다. 파도가 잔잔하게 몰려오는 포구 옆에 집을 얻고 나의 방에서 매일 작은 글을 쓴다. 이제는 어떤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이나 사건에 대해 쓰는 글이 아니다. 내가 체험한 것과 내가 느꼈던 감정을 매일 원고지 10장 분량 정도 쓰고 있다. 방향이 달라졌다. 그동안은 직업상 악의 세계의 단면을 묘사한 게 많았다. 이제는 선한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나는 활짝 핀 삶의 꽃을 표현하고 싶다. 더러 뿌리의 더러움과 거기에 묻은 흙을 제시하면서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걸 모를까. 법의 밥을 먹으면서 그늘 속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악은 보통 사람도 쉽게 찾아내고 비판할 수 있다.
선한 것은 사도 바울처럼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야 보이는 건 아닐까. 나는 마지막까지 선한 내용을 담은 작은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