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건달 세계의 대통령’ 허세 벗으니…
건달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던 분이 나의 법률사무소로 온 적이 있었다. 그 행차가 요란한 것 같았다. 그가 타 차 앞뒤로 여러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따라붙었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검은 양복을 입고 깍두기 머리를 한 근육질의 남자들이 허리를 구십도 꺽으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조폭영화에서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변호사님은 가방끈이 깁니다. 허름한 복장을 해도 여러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초라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저 같은 놈은 초라하면 무시받죠. 그래서 자동차가 뒤따르고 부하들이 절을 하는 그런 연출이 필요하죠. 모자람을 보충하기 위한 우리 세계의 방식입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에 집착하거나 재산을 자랑하는 이유도 그 내면의 공허를 채우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아는 목사가 나의 사무실을 들른 적이 있다. 그 목사는 주먹 출신이고 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허세가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전과를 털어놓고 약점을 드러내는 성격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전직 법무장관의 사무실에 갔었어요. 세월이 가서 그런지 전부 하얗게 늙은 사람들만 있더라구요. 잘난 사람들을 보면 허세를 부리느라고 애를 쓰는데 참 불쌍해 보여요. 체면이 뭐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아무 데서나 음식 먹고 편안히 마음 내키는 대로 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전직 장관을 보면 법원에 가서 변호사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사무실에 남자직원도 있고 여자비서도 운전기사도 있다니까요. 그 사람들이 장관님 장관님 하면서 올려줘야 좋아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저는 이해가 안돼요. 변호사님 사무실에 왔다는 그 건달 대통령도 그래요. 저는 핫바리 출신이지만 그렇다고 두목인 자기 체면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사람 거느리려고 하고 좋은 차를 타려고 하느냐 말이에요. 그런 헛 폼을 잡으려고 하니까 돈이 필요하고 무리한 일들을 하는 거 아닙니까? 허세를 부리려고 하면 망해요.”
나도 허세를 많이 부렸다. 사회적 체면을 지켜야 한다면서 고급스런 사무실을 차렸고 직원들을 두었고 운전기사도 두었다. 있는 척 해야 한 푼이라도 벌 수 있는 세상이라고 했다. 없다고 하면 밟고 있는 것 마저 빼앗아 가는 세상이라고들 했다. 나도 무대의상을 입고 잘난 척하며 살았다. 발뒤꿈치를 들고 높은 척 가장하면서 살았다. 다리를 넓게 벌리고 큰 척하며 어그적거리며 걷는 삶을 살기도 했다. 당연히 무대의상은 편하지 못했고 꾸미고 걸으니까 다리가 아팠다. 분장을 한 내 주변에 허깨비들이 몰려왔다.
그들이 던져주는 돈에는 낚시 바늘이 숨어있었다. 거기에 아가미가 꿰면 어판장 바닥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거리는 물고기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허세와 돈에 눌려 비굴해지면 내 영혼은 박제가 되고 말 것 같았다.
변호사에 대한 직업관이 다양할 수 있다. 엊그제 방송토론에 패널로 나온 한 중견 변호사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사회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고시에 합격하고 한국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대형로펌에 들어갔습니다. 사무실과 비서가 있었고 고급승용차의 뒷자리에 앉아서 가게 됐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와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그런 게 젊은이들의 로망이기도 한 것 같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일해보니까 변호사라는 게 철저한 서비스업이에요. 적정가격에 높은 퀄리티로 고객 만족을 시키도록 하는 게 목표죠. 예전에는 변호사가 사회정의를 앞세웠는데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법률사무실로 들어서는 사람 명칭이 고객이었다. 돈을 위해서 스스로 을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객이 탈세를 불법을 증거조작과 법정에서 거짓말을 요구할 때도 고객 만족이 목표일까. 만족도가 높은 게 높은 퀄리티일까. 법률가에게서 사회정의와 자존심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세라는 거품 때문에 자신을 을의 위치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냥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고 자기의 걸음으로 자기의 인생길을 가는 게 편한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