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그들은 왜 변호사 자격증에 목을 맬까?

토스토엡스키는 변호사를 ‘고용된 양심’이라고 표현했다. 로스쿨로 몰리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좁고 얕다. 돈 때문에 그리고 남의 눈을 의식해서 전문직이라는 명함을 가지기 위해서 로스쿨로 가려는 것이라면 말리고 싶다. 톨스토이는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곡괭이를 들고 밭을 가는 ‘성聖 농부’를 제시했다. 어떤 일을 하건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일이 천직이 아닐까.(본문에서)

조선닷컴에서 ‘최후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직도 대기업도 때려치우고 인재들이 로스쿨로 몰려든다는 기사를 봤다. 기자는 사람들이 왜 변호사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 같았다. 공통적인 것은 어떤 조직도 길어진 인생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MZ세대 직장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일류대를 나와 삼성을 가느니 지방대 로스쿨을 나와 평생 자격증 들고 사는 게 백배 나은 투자일 것 같다.”

대기업이나 공직에서 한 인간은 잠시 쓰다 효용이 끝나면 버리는 일회용 소모품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로스쿨 준비를 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은 이런 말을 했다.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며 격무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월 실수령액은 3백만원 정도밖에 안된다. 공무원은 정치권력에 시달리고 라인을 잘 타야 산하기관장이라도 한다. 아니면 50대 중반에 목이 잘려 동네 아저씨가 된다. 로스쿨 나온 대학동기는 변호사가 되어 벌써 강남에 집을 사고 아이들 교육에 투자한다.”

교권 침해에 염증을 느낀 교사들도 로스쿨에 도전한다고 했다. 경찰대학이 로스쿨 사관학교로 변했다고 한다. 경찰의 업무폭증과 승진 지연 때문이라고 한다. 전공의들이 의료소송의 증가와 보험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로스쿨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등의 이유였다. 그들이 변호사가 되려는 이유는 결국 돈과 전문직이라는 사회 인식으로 압축되는 것 같다.

나는 40년 가까이 변호사로 살아왔다. 그들에게 나의 경험과 느꼈던 감정을 참고자료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은 시간이 흐를 때마다 액수가 적더라도 돈을 버는 셈이다. 변호사는 고객이 없으면 순간순간 임대비, 인건비 등 돈이 모래시계같이 흘러내렸다. 움직일 때마다 돈이었다. 그걸 참는 게 힘들었다. 의뢰인이 없어 계속 적자를 보다가 빌딩에서 떨어져 죽은 변호사도 있다. 대학동기인 변호사가 돈을 벌어 강남에 집을 산 걸 보고 공무원 관두고 로스쿨 지원한 사람에게 묻고 싶다. “변호사가 됐는데 돈이 안들어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나는 평생을 살인범, 조직폭력배, 절도범, 사기범, 마약범 등 밑바닥 인생들을 접하면서 살아왔다. 변호사 일의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범죄인을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성자가 된 도둑인 쟝발쟌을 상상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다. 현실은 좀비들의 세상 같다. 영혼이 없는 살아있는 시체같다고 할까. 영혼이 있어도 사람의 영혼이 아니고 뱀의 영혼, 쥐의 영혼을 가진 것 같다.

학부형들의 갑질로 로스쿨로 가려는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엽기적인 살인범이나 조직폭력배를 상대하고 그들에게서 수고비를 받아야 하는 일이 저질 학부모를 만나는 일보다 쉬운 것 같으냐고. 나는 앙심을 품고 담당변호사를 칼로 찌르고 그 사무실에 불을 지르는 악마도 봤다.

내가 너무 참담한 현실만 얘기한 것일까. 그렇다면 로스쿨을 지원하는 사람들 꿈의 대상이 되는 변호사들의 달콤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얘기해 볼까.

성공의 상징으로 강변이 보이는 고급아파트와 럭셔리한 외제차, 골프와 헬스 회원권, 고급 사교클럽의 VIP회원을 자랑하고 클라리넷을 배운다고 자랑하는 변호사들을 봤다. 그게 공짜가 아니다. 우아한 백조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흙탕물 속에 발을 담그고 부지런히 갈퀴 질을 해야만 얻어지는 댓가라고 나는 본다.

공정하고 품위 있는 일을 주면서 거액까지 주는 경우는 없다. 그 흙탕물 안은 어떨까. 내가 직접 겪었던 한 예를 들어본다. 재벌급의 회장 부인이 판사 사위를 돈으로 사들였다. 사위의 불륜을 의심한 회장 부인이 그 대상으로 추정되는 여대생 살인을 청부했다. 그 여대생이 살해당하고 회장 부인이 수사 대상이 됐다. 회장 부인의 변론을 맡은 대형로펌에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았다. 장관 출신 법원장 출신등 기라성 같은 변호사들이 거짓말 경연대회를 연출했다. 증거를 인멸하고 증언을 조작했다.

사건이 끝나고 나는 대형로펌의 파트너인 친구 변호사들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거액에 취하면 그렇게 된다는 대답이 있었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변호사란 고객이 원하는 법률지식과 서비스를 완벽하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프로라고 했다. 또 다른 의견도 있었다.

전국 수능시험에서 2등을 하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천재가 있었다. 그가 운동권이 되어 민주화투쟁을 하다가 세월이 흐르자 변호사가 되어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자본주의의 첨병이라는 대형 로펌이 어떤가 알아 보기 위해서 들어왔죠. 삐까 번쩍하게 차려놓고 사기치는 게 로펌이더라구요.”

토스토엡스키는 변호사를 ‘고용된 양심’이라고 표현했다.

로스쿨로 몰리는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좁고 얕다. 돈 때문에 그리고 남의 눈을 의식해서 전문직이라는 명함을 가지기 위해서 로스쿨로 가려는 것이라면 말리고 싶다.

톨스토이는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곡괭이를 들고 밭을 가는 ‘성聖 농부’를 제시했다. 어떤 일을 하건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일이 천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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