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작가 황석영과 정을병…”살아남으면 글로 써야지”

황석영 작가가 1989년 방북 당시 김일성 당시 주석 등과 찍은 사진. 왼쪽부터 정경모 문익환 김일성 황석영 유원호씨

‘순이 이야기’라는 한 개인의 블로그에 있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 내용을 일부 옮겨보면 이렇다.

“황석영 작가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반공법이 시퍼렇던 시절에 북한을 간 것은 경계를 넘으려는 자신의 의지였다고. 작가로서 경계는 견딜 수 없는 구속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감옥,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등 속박과 경계 그리고 제한 속에서 살고 있는데 분단의 감옥을 벗어나 보려고 했던 무모함이 대작가로서 타고난 기질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는데 우기에 참호 속에 있으면 물이 어깨까지 차오르고 포탄이 눈 앞에서 터질 때에도 황석영 작가의 기도는 이랬답니다. ‘살려주면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이 죽음의 고비에서 벗어나면 정말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살고자 했답니다. 안기부에 잡혀가 몇 날 며칠 취조 당하고 나면 취조관과도 정이 든다고 합니다. 서로의 방향은 우와 좌로 완전히 다르지만 대화를 주고받다 보면 사람이라 정이라기 보다 상대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취조를 마친 안기부 직원이 ‘당신, 징역 갈 건데 뭐. 작가한테는 겪는 게 다 피가 되고 살아 되는거라며?’라고 하더랍니다. 황석영 작가는 그 말이 맞더래요. 다 망해서 밑바닥으로 가도 글 쓰면 되지. 살아남기만 하면 글로 써야지.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지옥에 떨어져도 글을 써서 승화시킨다는 작가다운 태도입니다. 마치 많은 글감을 얻으려고 일부러 그런 것처럼 황석영 작가는 스스로 서사가 많은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황석영 작가는 일부러 문제의 지역만 골라 다니는 사람 같았습니다. 개인의 역사로는 너무 힘든 세월을 살았지만 피하지 않고 늘 앞장섰던 것은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문학이라는 큰 무대에 오른 하나의 배역으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의 삶에서 서사가 많은 것은 고단한 삶이고 불편하고 괴롭지만 작가에게는 글을 쓰는 재료가 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가는 일부러라도 서사를 만들어 가는 삶을 사는 것을 황석영 작가에게서 봤습니다.”

황석영 작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선하고 좋은 면을 들여다 보는 블로그 운영자의 마음이 착한 것 같다. 황석영 작가의 행위는 세상의 잣대로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나는 황석영의 작품을 대부분 읽었다. 그리고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훌륭한 작가들이 있다.

정을병 작가

소설가 정을병씨는 5.16혁명 후 강제노동을 시키는 국토건설단에 직접 들어가 체험을 하고 <개새끼들>이라는 소설을 썼다. 그 소설 때문에 보안사령부에 끌려 들어가 고문을 당하고 ‘문인 간첩’이라는 죄를 뒤집어썼다. 그는 고문당한 체험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뜨거운 라지에타 위에 맨발로 세우더라구요. 뜨거워서 못 견디겠으니까 한발로 섰다가 다른 발로 교대하고 그랬죠. 곰을 훈련시킬 때 뜨겁게 단 쇠판 위에 서게 하고 그렇게 양발을 교대로 딛게 한다더라구요.”

자기의 아픈 얘기를 하면서도 그의 분노는 곰삭아 다른 존재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상처를 철저히 객관화시키는 게 프로들의 태도인 것 같다. 소설가 정을병씨는 자기를 고문한 수사관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수사관이 나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빠져나가는 요령을 몰래 말해주더라구요. 검사 앞에서 절대로 자백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고문을 당해 허위자백을 했다고 사실대로 말하래요. 그렇게 끝까지 버티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훌륭한 작가가 되라고 하더라구요.”

그 수사관의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나 이념적 지향이 무엇인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모든 시대에 그런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진짜 작가란 그런 모순적인 사회에서 십자가를 지고 거기서 쏟아낸 피로 글을 쓰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외국의 작가를 보면 경험에 목 말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까뮤, 포크너, 조지 오웰, 카잔챠키스 등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런 것 같다. 석탄 광산에서 일하기도 하고 사회의 밑바닥을 훑기도 하는 것 같았다.

<인간시장>이라는 베스트 셀러를 쓴 작가 김홍신의 변론을 하면서, 그리고 일제시대를 살았던 소설가 김동인의 영혼을 변호하면서 문학적으로 순교하는 진정한 작가의 모습을 보았다.

오늘도 수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있다. 그들은 무엇으로 글을 쓰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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