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검사와 장관…2009년 광우병 괴담 조사실 ‘현장’

서울중앙지검 조사실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조사를 받는데 입회를 많이 했다. 검찰에 불려가 여러 시간 동안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한 내용들이 사실관계의 주춧돌이 된다. 그런 것들이 역사가 되기도 했다. 과거 재판 기록을 들추어 보면 애국지사나 민주투사들의 절규가 담긴 많은 조서들이 있다. 변호사인 나는 조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격하고 증인이 되어주는 게 업무이기도 했다.

2009년 3월 2일 오후 나는 정운천 농수산축산부 장관과 함께 서울중앙지검 조사실에 앉아 있었다. MBC 피디수첩 프로그램 제작자들을 수사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장관님은 광우병 방송을 보셨나요? 보도 내용이 어떻든가요?”

“화면에 나오는 쓰러지는 소는 광우병이 아니예요. 다우너병이라는 다른 병에 걸린 소죠. 속인 거죠. 아레사 빈슨이라는 미국 여자가 다른 원인으로 죽었는데 광우병으로 죽은 것처럼 만들었더라구요. 그런 게 한 두개가 아닙니다. 방송 첫 장면에 나오는 소가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미국의 도축장인 것처럼 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전혀 다른 나라의 장면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게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한국인이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94%라는 것도 그렇죠. 딱 방향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는 자료만 보이고 인터뷰도 그렇게 한 것 같아요. 그건 보도가 아니고 국민 선동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피디가 친일 매국노를 언급하면서 주무부 장관인 저와 소고기 협상대표를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나라의 이권을 팔아먹은 매국노로 만들었더군요.”

“방송이 거짓이라면 국민에게 진실을 말하셨나요?”
“대전의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광우병에 관한 토론이 있었어요. 내가 해명을 하기 위해 그곳에 갔죠. 시위대가 건물 전체를 봉쇄하고 있더라구요. 사람들이 뒷문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장관 체면에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정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했죠. 양복이 다 찢어지고 안경도 깨졌어요.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가 하고 참담하더군요.”

검찰은 방송제작진에 대한 형사처벌을 명예훼손쪽으로 잡고 있었다. 검사가 간단히 법리를 알려주면서 말했다.

“이제부터 장관님에 대해 인터넷에 댓글이 올라온 걸 확인하겠습니다. 이유는 댓글이 수입 쇠고기에 대해 국민들이 받은 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시죠”

장관이 대답했다. 검사가 책상 앞에 놓인 서류를 대충 읽더니 장관을 향해 말했다.

“야, 이 무식하고 덜 떨어진 찌질한 놈아”
“예?”
장관이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 매국노 같은 새끼야”
“——”

장관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검사가 뭔가에 빙의되어 장관에게 욕을 하는 것 같았다.

“국민 건강 주권을 양키놈들한테 넘기고도 지금 숨을 쉬고 있냐?”
“국민은 광우병 쇠고기를 먹게 하고 너는 한우를 쳐 먹냐?”
검사는 몇백개가 넘는 댓글을 다 그렇게 읽을 기세였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심한 언어 폭행의 2차 피해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장관의 얼굴이 모멸감으로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그만하시죠.”
중간에 내가 말렸다. 댓글 전체를 보여주고 읽은 것으로 해도 될 것 같았다.

“왜요? 난 그저 확인차 읽어드리는 것 뿐인데요.”
검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사기관은 원래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검사가 질문의 형식을 바꾸고 강도를 낮추어 다시 물었다.
“장관님은 친일파 매국노라고 불리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그야 기분이 나쁘죠.”
“어떻게 나쁘셨는데?”
“저는 20년 동안 재야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입니다. 농대를 졸업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민들 속에서 평생 신뢰를 쌓으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제가 경험한 걸 바탕으로 농촌에 대한 정책을 가지고 대통령 후보를 찾아갔었습니다. 그걸 한번 실행해 보라고 장관을 시키더군요. 제 나름대로는 장관이 되어 애국심을 가지고 사명감으로 일했는데 친일파 매국노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검사는 말을 들으면서 키보드를 두드려 컴퓨터에 입력시키고 있었다.

장관이 말을 계속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를 친일파 매국노라고 하는 것도 화가 나지만 그보다도 방송이 거짓말을 하고 거기에 속은 국민에게 대통령이 허리를 굽혀 사과하는 게 얼마나 분통 터지는 일입니까? 내가 요구하는 건 법과 질서를 바로 잡아달라는 겁니다.”

그렇게 다섯 시간의 긴 조사가 끝이 났다. 조서가 작성되고 그 끝에 변호사인 나의 의견도 우겨서 적어 넣었다.

다음날 아침 어제 조사받은 상황이 기사로 신문에 떴다. 장관의 고소로 MBC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기사는 본문보다 단서가 더 컸다. 명예훼손의 법리가 워낙 까다로워 무혐의나 법원의 무죄선고를 받을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누가 언론에 흘렸는지 의문이었다.

권력은 허위방송이나 가짜뉴스를 잡을 능력이 없었던 것일까. 세월이 지나면서 그 수사기록은 파기됐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가짜뉴스와 허위방송에 속은 군중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명박 대통령 같이 사과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파면됐다. 가짜라도 군중이 모이면 진짜로 되는 것 같다. 나는 기억을 떠올려 이런 작은 흔적을 남겨둔다. 입회 변호사의 의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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