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인생 길 ‘행복한 여행객’의 꿈

인생 칠십 고개에 오르면서 나는 변호사의 활동을 일단 정지했다. 소가 되새김을 하듯이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재해석할 때가 됐다. 변호사 일지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 오늘은 20년 전의 조용헌씨를 만났다. 인생길의 모퉁이를 돌면 끝이다. 우리 모두 행복한 여행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본문에서)

2007년 7월 25일 수요일이었다. 내가 탄 25000톤의 여객선은 블라디보스톡을 가기 위해 동해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갑판을 산책하다가 구석에서 햇볕을 쬐던 40대 중반쯤의 남자와 얘기를 나누게 됐다. 여행길에서 만나면 마음이 활짝 열리게 마련이다. 그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익산이 고향인데 아버지한테 논 삼십 마지기를 받았어요. 그 돈으로 여행을 했죠. 젊은 날의 방황은 공부 아니겠어요? 옛말에 만리를 여행하고 만권의 책을 읽고 만명의 사람들과 교제해 보라는 소리가 있어요. 익산에 있는 내 아파트에 만권의 책이 있어요.”

그는 애초에 삶의 방향을 달리 잡은 사람 같았다. 현대의 순례자라고 할까.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취직을 하기도 했었는데 못있겠더라구요. 중이 되기 위해 불교대학원에도 가보고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면서 세월을 보내기도 했어요. 인도에 가서 뿌나의 아슈람 근처에 집을 얻어놓고 위빠싸나 명상을 하기도 했어요.”

그가 추구하는 게 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 너머의 것을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도 많았다. 알고 보니 그는 조선일보에 고정적으로 글을 써 보내는 칼럼니스트 조용헌씨였다. 만리를 여행하고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명의 사람들을 만나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옛말에 ‘만’이라는 표현은 숫자가 아니라 많이 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바쁜 일상 중에서라도 지하철 안에서 책 몇 페이지라도 읽고 휴가를 얻어 바닷가 도보여행을 하고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맺는 삶이 그 축소판은 아닐까.

나도 적극적으로 여행을 하고 공들여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신중하게 지혜를 얻으려고 한 계기가 있었다.

사십대 중반의 어느 봄날 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야산에 수채화같이 풀리는 연두색의 잎들을 보면서 나는 놀랐다. 세상이 그렇게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았다. 살아난다면 지구별을 샅샅이 구경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 나는 삶의 우선순위를 여행에 두고 십오년간 세상을 흘러다녔다. 가슴이 떨릴 때 지구별의 아름다움을 봐야지 다리가 떨리는 노인이 되면 여행도 무의미해 질 것 같았다.

가볍게 생각하던 독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할 무렵 내 방에 놀러 왔던 후배 변호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변호사가 업그레이드 되는 세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정치인이 되는 것, 미국 유학을 해서 전문성을 깊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은 내 생각인데 고전부터 시작해서 인문학에 관한 책들을 고시 공부하듯 20년 정도 파면 내공이 어느 경지에 가 있지 않을까?”

그의 말이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제시한 마지막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시력이 괜찮을 때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차의 고장난 헤드라이트 같이 눈이 늙으면 책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읽은 책들을 한 줄로 쌓아 올려 구름 높이 까지 가면 좋을 것 같았다.

중국의 작가였던 포송령은 얘기에 굶주려 길가에 돗자리를 깔고 술 한독을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는 모스크바에서 출발해서 10000km의 시베리아 여행을 했다. 그는 걸으면서 일만명 이상을 만나 취재를 하고 카드를 만들었다. 그는 각종 범죄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곳곳에 죄인들의 비참한 생활과 자유를 향한 동경이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변호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람을 만나 깊은 얘기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들과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동행할 때도 많았다. 범죄자나 악인에게서도 반면교사로 배울 게 있다. 변호사가 시간을 내고 경청하는 태도만 취하면 수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자기 얘기들을 하고 싶어했다. 처리하는 사건 하나가 이미 관념이나 추상이 아닌 구체적인 스토리였고 관련된 인물들이 나뭇가지처럼 퍼져나갔다. 변호사는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서울역 앞의 노숙자까지 그 누구와 대화해도 이상하지가 않은 직업이었다. 대화를 신청하면 유명인이라도 대부분 거절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꼼꼼하게 공책에 적어나갔다. 그게 나의 변호사 일지다.

인생 칠십 고개에 오르면서 나는 변호사의 활동을 일단 정지했다. 소가 되새김을 하듯이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재해석할 때가 됐다. 변호사 일지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 오늘은 20년 전의 조용헌씨를 만났다. 인생길의 모퉁이를 돌면 끝이다. 우리 모두 행복한 여행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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