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학폭 출신의 고해성사

나에게 폭행 당한 몇 명을 지금도 기억한다. 만날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다. <이미지 엄상익 변호사>

중학교 시절 나는 불량학생이었다. 담배도 배웠고 술도 마시기 시작했다. 태권도와 유도도장을 나갔고,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칼을 맞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다. 억울했지만 그동안 나의 불량한 행적에 대한 결과였다.

나에게 폭행 당한 몇 명을 지금도 기억한다. 만날 수 있으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다. 그런 기회가 있었는데 때를 놓쳤다. 가까운 한 친구가 내 사무실 공간을 빌려 소박한 파티를 한 적이 있다. 김밥과 과자 그리고 와인을 곁들인 모임이었다.

장소는 빌려주었지만 나는 손님 중 하나였다. 그 모임에 온 30명 가량 중 구석의 한 사람이 어쩐지 눈에 걸렸다. 옷차림이 초라해 보이는 40대 중반쯤의 작달막한 남자였다. 삶에 지친 표정이었다.

그의 옆모습을 보면서 세월 저쪽의 한 장면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모두들 면으로 된 검정교복을 입고 다닐 때였다. 그 아이는 윤기가 나는 양복지로 맞춘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못마땅했다. 그 아이를 학교 뒤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부자라고 그렇게 티를 내지 말라고 하면서 겁을 주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카터 칼을 꺼내 그 교복의 일부를 그어버렸다. 그 부모가 봐도 된다는 나의 경고였다.

세월이 흐르고 철이 들면서 후회가 됐다. 그 아이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 그 부모도 경악하고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싶었다. 중년의 남자가 된 그 아이를 조촐한 모임의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구석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김밥을 먹고 있는 그에게 다가갈까 하다가 망설였다.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그러다 기회를 놓쳐버렸다.

나는 비겁하고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량학생 경험이 있어서인지 나는 청소년들의 범죄사건을 취급할 때 그들에게 공감하는 편이었다. 20
년 전 60대쯤의 남자가 나의 법률사무소를 방문했다. 사고 치는 10대 아들이 미워서 감옥에 가도 그냥 놔뒀다고 했다. 10여년이 흐르니까 아들을 방치한 자신이 죄인인 걸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뒤늦었지만 변호사가 아들에게 가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오지에 있는 청송교도소를 찾아가 그의 아들을 만났다. 미남청년이 면회실로 나왔다. 굵고 검은 눈썹에 하얀 얼굴이었다. 감옥 속에서도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열여덟살에 감옥에 들어왔는데 지금 서른살이예요. 앞으로 7년을 더 살아야 하죠. 저는 중학시절 공부하기 싫었어요. 자연히 주먹 쓰는 아이들과 어울렸죠. 재미있었어요. 누가 싸움을 잘하고 깡이 센 지가 자랑이었죠. 용돈이 필요해지자 빈 집에 들어가 돈을 가지고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한 아이가 체포되어 부는 바람에 감옥에 가게 된 거죠.”

불량청소년들의 행로가 대개 그랬다. 죄의식 없이 장난같이 범죄들을 저지르곤 한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교도소로 왔을 때 탈출하려고 했다가 들켜서 징벌방에 들어갔어요. 꽁꽁 묶여서 어둡고 비좁은 콘크리트 박스 안 같은 곳에 쳐넣어졌을 때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요. 벽에 막 얼굴을 부딪치면서 절규했죠. 그때 그래도 위로가 된 건 내가 좋아하던 여자아이 때문이었어요. 감옥에 들어왔는데도 열심히 편지를 써 보내더라구요. 그 아이가 정말 내게는 어둠 속에서 비치는 한줄기 빛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 보니까 보내줘야 하겠더라구요. 제 형기가 엄청나게 긴 데 사랑한다면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다시는 편지 쓰지 말고 다른 남자한테 가라고 했죠. 그해 크리스마스때 카드를 보냈는데 답장이 없더라구요. 얼마나 서글펐는지 몰라요.”

그의 말이 잔잔한 물결이 되어 내 마음기슭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의 말이 계속되고 있었다.

“누가 믿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하나님을 찾았어요. 처음에는 두렵고 힘들어서 찾았는데 지금은 아니예요. 예수쟁이가 된 덕분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미장기술 자격증도 땄어요. 통신으로 성경공부도 하는데 더 신나는 건 서예를 배워서 전국 교도소 작품전에서 제가 입상을 했어요. 이 감옥 안에서도 살라고 마음먹으면 바쁘다니까요. 변호사님이 이왕 오셨으니 기도나 해주고 가세요.”

그의 영혼은 어두운 감옥 안에서도 활짝 피어 있는 것 같았다. 성경을 보면 집 짓는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 그 분에게 사용이 되면 흙수저 출신도 금수저가 못하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되는 사람은 어떤 수렁에서도 벗어나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쯤 그는 잘살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마음의 상처를 낸 그 사람을 다시 만나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다.

그의 영혼은 어두운 감옥 안에서도 활짝 피어 있는 것 같았다. 성경을 보면 집 짓는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 <이미지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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