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여행길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

폴란드 여행길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는 사회에 대한 통찰도 깊은 것 같았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생각도 취향도 다르다. 나는 빨강을 좋아하고 너는 파랑을 좋아할 수 있다. 나는 장미를, 다른 사람은 백합을 선호할수도 있다. 그런 색색의 취향이 사회라는 한다발로 묶여질 때 한가지 꽃만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다양성이라고 하는걸 여행길에서 배운 것 같았다.(본문 가운데)

바닷가의 밤이 깊어가고 있다. 시계 바늘이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창문은 짙은 어둠에 젖어 검은색 거울이 된다. 그 거울에 백발의 한 노인이 보인다.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있다. 나의 모습이다. 아직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오래 전 메모들을 들추어 보고 있다. 한밤 중에 소가 낮에 먹은 것들을 다시 꺼내 조용히 되새김을 하듯 나는 세월 저쪽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한 말들을 되씹어 본다.

메모 속에서 27년 전 여행길에서 만난 늙은 정신과의사가 나타났다. 1997년 4월 말 어느 날인 것 같다. 나는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크라카우로 가는 버스 안에 있었다. 차창 밖으로 작은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40대 초반이던 나는 몇몇 한국 노인들의 여행팀에 끼어 같이 가고 있었다. 60대 중반인 그들은 나의 시각으로는 한참 늙은 노인들로 보였다.

서로의 어색함을 지우려는 듯 작달막한 한 노인이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이런 만남을 즐기는 노년의 인생이 재미없지는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런 여행길에서 사귐이 더디기는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끝에 가서는 아주 잘 익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짧은 여행이지만 한번 마음껏 모든 걸 눈과 가슴에 담아가도록 합시다.”

그는 오랫동안 의원을 해온 정신과 의사라고 했다. 취미로 사진을 찍는데 그 부문에서 초대작가까지 갔다고 했다. 내공이 있는 분 같았다. 버스 뒷좌석에서 그 다음 노인이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다. 맑고 선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저는 젊어서부터 석고를 사용하는 의료자재를 만들어 왔습니다. 정형외과에서 뼈를 고정시킬 때 사용하는 석고붕대죠. 아주 작은 분야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제품을 개발해서 제가 만드는 제품의 분야만은 아직 외국 제품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버텨냈습니다.”

대단한 집념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본 경우를 봐도 5mm짜리 플라스틱 나사에 일생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단단한 작은 벽돌 같은 그런 존재들이 이 사회의 받침돌이 아닐까. 내 옆에 앉아있던 노인이 내게 속삭였다.

“저 양반 대학에 장학금을 내놓아 많은 학생을 뒷바라지 하고 있어요.”

여행은 여러 종류의 삶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날 저녁 우리 일행 몇 명은 크라카우시의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레스트랑에 모였다. 식탁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무료한 시간을 때우려는 듯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다른 여행 중 만난 특이한 분이 있었습니다. 교사라고 했습니다. 그 분을 옆에서 지켜봤는데 입고 있는 허름한 옷 한벌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았어요. 물론 물건 사는 일도 전혀 없구요. 여행 중 여관에서 속옷을 빨아 말려 다음날 입고 떠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가는 곳마다 열심히 들여다 보고 생각하고 하더라구요. 참 검소한 여행인 것 같았어요.”

“좋은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말이죠.”

버스 안에서 인사를 했던 정신과 의사가 그 말을 받아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값싼 넥타이라도 매일 같이 바꾸어 가면서 거기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근검절약이라고 해서 모두가 똑같이 배를 곯거나 하는 획일적인 현상이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사라져야 할 것 같아요. 한 벌의 옷만 가지고 예수의 사도같이 여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넥타이 하나라는 조그만데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의 행복도 인정해주는 다양성이 이제는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외국에 옷을 많이 가지고 나오더라도 포터가 방까지 들어다 주는데 큰 돈을 쓰고 여행하면서 작은 돈에 너무 인색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그의 말중에 ‘다양성’이라는 말이 빗장이 굳게 닫혀있는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우리는 모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리와 다르면 동화 속의 ‘미운오리새끼’같은 고난을 당하는 게 내가 살아온 주변환경이었다. 나이든 정신과 의사는 결론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몇 십년의 짧은 역사 속에 왕도 양반도 다 없어졌죠. 6.25전쟁으로 다 같이 평등하게 가난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난데없이 이웃이 부자가 된 세상이 나타난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새로 나타난 부자를 인정하기 힘든 거죠. 부동산 투기로 뇌물로 돈만 보이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줏어먹고 부자가 된 경우가 많으니까요.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다 뇌물먹고 감옥에 갔잖아요? 우리 사회에서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권위가 없어진거죠. 이제 와서 욕을 덜 먹는 박정희를 영웅시하지만 무너진 권위가 쉽게 살아나기 힘들 걸로 봅니다.”

그는 사회에 대한 통찰도 깊은 것 같았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생각도 취향도 다르다. 나는 빨강을 좋아하고 너는 파랑을 좋아할 수 있다. 나는 장미를, 다른 사람은 백합을 선호할수도 있다. 그런 색색의 취향이 사회라는 한다발로 묶여질 때 한가지 꽃만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그걸 다양성이라고 하는걸 여행길에서 배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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