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욕쟁이 노인들의 속 마음

한 여자 노인이 ‘씨발노인’의 뒷자리에서 소리쳤다. 말버릇이 잘못 든 ‘씨발 영감’이 또 시비가 붙은 것 같았다. 부인 옆에 있던 남편인 영감도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사진은 시발택시 앞모습


“시발 시발 우리의 택시 씨발”

같은 실버타운에 있는 육군 대령 출신인 팔십대 노인이 화가 가득 나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식당의 뒷자리에 있는 영감하고 싸웠어. 우리 집사람이 말을 하는데 뒤에서 시끄럽다고 하면서 말 끝에 ‘씨발’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왜 욕을 하느냐고 했더니 ‘내가 언제 욕을 했어?’라고 하더니 말끝에 또 ‘씨발’이라고 하는 거야. 말끝마다 후렴같이 ‘씨발’이 나오는 거야. 기가 막혀서. 경찰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어. 주먹다툼을 하고 싸울 수도 없고 말이야.”

대령 출신 노인은 그 다음부터 식당에 오지를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다음부터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는 ‘씨발 영감’을 눈 여겨 보았다. 지나칠 때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선한 표정에 착한 눈빛이었다. 실버타운에서 혼자 살아온 세월이 10년을 향해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외롭고 고독한 노인이었다. 그는 자기가 말끝에 ‘씨발’이라고 하는 걸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잘못된 말버릇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았다.

노동자들이 ‘염병할’이라던가 ‘우라질’이라고 하는 푸념 비슷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후렴 부분인 욕만 강하게 들려올 수 있다.

실버타운에 있어 보면 식사 시간에 다양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살아온 삶이 다르고 배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늙었다는 것 하나로 모여든 것이다. 조용한 노인들의 세계에서 가끔 가다 돌과 돌이 부딪쳐 파란 불이 튀어나오는 듯한 충돌도 있다.

나와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 팔십대 중반이 넘은 해병대 출신의 노인은 속칭 ‘일진노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부리부리한 눈이 번들거리는 그에게 감히 눈을 마주치는 노인을 보지 못했다. 그 역시 외롭게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내면은 부드러운 것 같았다.

여름이면 실버타운 수영장으로 아이들이 놀러오기도 했다. 그 노인은 아이들이 혹시나 다칠까 봐 수영장 바닥의 돌이나 유리조각이 있나 살피고 그걸 치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는 실버타운에 있는 개를 끔찍이 사랑했다. 식당의 잔반통을 나무젓가락으로 뒤져 고기조각을 찾아 양재기에 담아 개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개들은 그만 나타나면 어쩔 줄 모르고 누워서 뒹굴며 좋아했다. 어느 날 지나가던 누군가 그영감이 사랑하는 개에게 돌을 던졌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사람이 지나가는 데 짖었던 모양이다. 식사시간에 해병대 노인이 나타났다.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밥을 먹는 중인 노인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었다. 개를 때린 범인을 색출하는 눈빛이었다. 그 노인의 눈이 한 사람에게서 멈췄다. 레이저 같은 눈빛을 받은 노인도 실버타운 안에서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매일 헬스장에서 몇 시간씩 역기를 들며 근육을 키우는 노인이었다.

“너 내 개 때렸지?”

해병대 노인이 말했다.

“나 개 안 때렸어.”

그때 갑자기 작달막한 다른 노인이 그의 앞에 나타나 말했다. 초등학교 교장출신이라는 노인이었다. 그도 개를 사랑하는 노인그룹이었다.

“왜 개를 때리고 그래? 그럼 못써.”

증인으로 나선 셈이었다. 해병대 출신 노인이 독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개새끼야 나가서 한판 뜨자”

“나 정말 개 안 때렸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공격당하는 꼬리를 내라고 울상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가 싸우자고 일어섰으면 나사가 풀어지고 녹물이 흘러내리는 고물기계가 된 노인들이 부딪쳐 망가질 뻔 했다. 적막한 실버타운 안에도 가끔 그렇게 소용돌이가 이는 것 같다.

엊그제였다. 저녁무렵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악을 쓰는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왜 욕해?”

한 여자 노인이 ‘씨발노인’의 뒷자리에서 소리쳤다. 말버릇이 잘못 든 ‘씨발 영감’이 또 시비가 붙은 것 같았다. 부인 옆에 있던 남편인 영감도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씨발 영감’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그들이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무의식 중에 또 ‘씨발’이라고 한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그는 분노했던 여성노인의 남편을 멀리서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너, 따라 나와”

한판 싸우자는 말이었다. 그는 자기가 왜 욕을 먹는지 모르고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표정이었다.

내 옆에서 밥을 먹던 해병대 노인이 갑자기 내게 물었다.

“변호사님 예전에 높은 데 있었다면서요. 서로 고소를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놓고 한판 붙으면 어때요? 법으로 괜찮죠? 그렇게 하고 싶은데”

“결투는 안됩니다. 알았죠?”

내가 말했다. 노인들의 세계도 각양각색이다. 어려 부터 인격을 갈고 다듬어야지 세월이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상한 점도 있다. 거칠게 보이는 그 노인들의 내면은 사랑이 있고 비단결인데도 겉만 보고 시비가 붙는다.

갑자기 엉뚱하게도 내가 어린 시절 시내를 다니던 ‘시발택시’가 떠오른다. 방송에 유명한 평론가가 나와 그 이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시발택시

‘시발 시발 우리의 택시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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