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50년만에 한국땅에 돌아온 노인의 제언

‘친일파’라는 말이 6.25전쟁 때 북쪽에서 ‘반동’이라고 하는 말하고 똑같이 들리는 거야. 치욕을 도려낸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언어화된 관념이고 사상인 거야. 다민족국가인 미국에서 살아보니까 민족이라는 거 의미가 없어. 앞으로의 세계는 여러 민족이 다 함께 섞여 살게 될 걸.” 그 노인은 일제시대를 살아봤다. 미국에서 50년 넘게 살았다고 했다. 이제 고향인 한국 땅으로 죽으러 왔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그의 얘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본문 중에서) 

“민족이라는 거 의미 없어”

내가 묵고 있는 바닷가 실버타운에는 수십년 동안 미국에서 살다가 역이민을 온 노인들이 많다. 나의 소년시절 관념으로 그들은 선택된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 시절 내게 미국은 천국이었다. 내가 사는 한국은 판자집들이 야산에 다닥다닥 붙어있고 거지들이 들끓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초등학교 시절 삼류극장에서 본 미국영화의 광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파란물이 찰랑거리는 풀장 옆의 식탁 앞에서 미국인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흰 접시 위에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와 투명한 유리글래스 속의 붉은 포도주는 환상이었다. 그런 천국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었다. 다만 선교사의 초청을 받거나 천재같은 머리를 가진 극소수만이 갈 수 있었다.

미국행은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때 미국으로 갔던 노인들이 내가 묵는 실버타운으로 역이민을 와 있다. 그 중에는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부자가 되어본 분도 있고 박사학위를 따고 미국에서 평생 교수를 하다가 귀국한 분도 있다. 그들은 죽으러 왔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자기들이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부자나라라고 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지금의 한국은 어떤 사회일까.

하루는 밥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미국에서 온 90대 노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주민센터에 갔는데 6.25전쟁의 참전용사라고 하니까 담당 공무원이 자기는 월남전은 알겠는데 6.25전쟁을 모르겠다고 하는 거야. 손자뻘인데 요즈음은 역사를 안가르치나 봐. 그리고 이상한 게 있어. 해방 이후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이나라에서는 일본을 미워하지 않으면 친일파가 되나봐. 모두 쉬쉬하고 두려워하면서 입이 막혀있는 것 같아.”

“참 일제시대 지금으로 치면 고등학교까지 다니셨겠네요?”
내가 물었다.

“맞아요. 나는 일본 이름도 있고 일본말을 했어. 국적이 일본인이었어. 내가 살았던 지금의 서울인 경성은 식민지가 아니라 법상 일본 본토의 지방도시였지. 해방이 되니까 우리 땅이 미군의 점령지가 되고 일본 총독 대신 미군 장군이 대통령인 셈이더라구. 6.25전쟁 때 나는 군대에 끌려가 전방에서 전투에 참여했는데 다행히 죽지 않았어. 전쟁이 끝나고 취직을 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한국은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어. 일제시대 학교에서 일본의 무사도정신을 배웠는데 그 안에는 차라리 정직과 성실이라도 들어있었어. 그런데 6.25전쟁 후의 한국사회는 그게 아닌 거야. 환멸을 느끼고 재주를 피워서 미국으로 건너갔어. 거기서 또 놀란 게 있어. 한국의 고관이 6.25전쟁 때 미국으로 아들을 빼돌려 그 아이들이 미국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더라구. 돈없이 간 나는 그 아이의 집에서 또 머슴 노릇을 했지. 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데 ‘코리아’라고 하면 도대체 아무도 모르는 거야. 일본인이냐 중국인이냐 둘 중의 하나만 대답하라는 것 같았어. 내가 일본어를 하니까 그냥 일본인으로 행세했지.”

백년의 세월을 건너온 그는 살아있는 역사 자체였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있었다.

“미국을 보니까 하와이나 알래스카를 돈으로 사서 자기 나라로 만들었어. 민족이 중요하지 않아.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고 모두 미국 사람이라고 하는 거야. 텍사스도 캘리포니아도 원래는 멕시코 소유였지. 그런 미국이나 내가 자랄 때의 일본이나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일본도 한국을 그런 식으로 병합한 거 아닌가? 나는 일본이 차라리 중국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중국은 우리를 천년 동안 속국으로 삼으면서 학대하고 뜯어먹었잖아? 금과 은을 바치게 하고 심지어 수 많은 처녀들을 데려다 노예로 삼았잖아? 일본은 그래봐야 36년이야. 일본은 자기네 돈으로 한국에 철도를 놓고 기반 시설들을 설치했어. 자기네 이익을 위해 그랬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우리가 그 덕을 보고 그 바탕에서 발전한 게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 와서 내 생각을 말하면 친일파라고 손가락질 하면서 입을 틀어막는 느낌이 들어. 그 시절을 살아보지도 않은 놈들이 더 잘났다고 떠드는 것 같아. ‘친일파’라는 말이 6.25전쟁 때 북쪽에서 ‘반동’이라고 하는 말하고 똑같이 들리는 거야. 치욕을 도려낸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 언어화된 관념이고 사상인 거야. 다민족국가인 미국에서 살아보니까 민족이라는 거 의미가 없어. 앞으로의 세계는 여러 민족이 다 함께 섞여 살게 될 걸.”

그 노인은 일제시대를 살아봤다. 미국에서 50년 넘게 살았다고 했다. 이제 고향인 한국 땅으로 죽으러 왔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그의 얘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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