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는 눈

“북을 무서워하는 건 후방에서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 얘기지 최전방에 있어 보니까 그렇지 않았다.” 

차디찬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파도가 흰 거품을 뿌걱뿌걱 품어내면서 힘들어하는 것 같다. 바다를 끼고 지나가는 해안로의 잎 진 가로수도 축축하게 젖어 있다.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노동을 한다. 내가 살 예정인 해파랑길 앞에 있는 낡은 집을 인부 두 명과 고치고 있다. 인부 중 한 명은 미장, 보조는 일용잡부인 러시아 청년이다. 러시아 청년이 잘려진 드럼통 안에서 걸죽한 모르타르 반죽을 플라스틱 바가지로 퍼주면 미장이는 그걸 왼손에 든 나무판에 받아 오른손에 든 흙손으로 벽 위쪽으로 쓱 밀어 올린다. 거친 벽이 시멘트 반죽으로 화장한 듯 매끈해진다.

나는 망치와 끌로 바닥의 타일을 뜯어낸다. 본드로 붙였는데 돌같이 단단하게 붙어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쭈그려 앉았다가 일어서기가 힘이 든다.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인부들 품값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해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경험을 해봐야 실체를 조금 알 것 같다.

원로 소설가 정을병 선생은 5.16 직후 강제노동을 시키는 국토건설단에 들어가 노동한 체험을 소설로 쓴 걸 내게 얘기했다. 뛰어난 작품을 쓴 외국의 작가들을 보면 경험에 목말라했다. 처절할 정도로 자신을 현실의 구덩이 속으로 집어넣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젊은 날의 고통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20대 중반쯤의 군대 생활이 그중 하나다.

뒤늦게 법무장교가 되어 최전방 사단으로 배치됐다. 사단장은 병사들이 겪는 혹독한 고통을 먼저 알아야 한다면서 휴전선 부근의 순찰을 명령했다. 먼 훗날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눈 덮인 남과 북의 경계선 부근을 혼자 돌아다녔다. 지뢰밭 사이에 걸어다니는 좁은 순찰로가 있었다. 그곳은 작은 불빛이라도 비치면 언제든지 적의 총알이 날아올 수 있었다. 적의 정찰조에게 걸리면 목이 잘려 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수은주가 영하 20도 아래로 가는 추운 지역이었다.

외롭고 무서웠다. ‘나만 왜?’라는 억울함에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고시공부 도중에 어정쩡하게 군에 온 셈이었다. 주위에는 편법을 써서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이 합격하고 좋아했다. 입대해도 배경이 좋으면 서울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추웠다. 날씨가 추운 것인지 내 마음이 추운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순찰을 하다보면 어둠 속 구덩이 속에서 병사들이 혹독하게 추운 겨울밤을 보내고 있었다.

구덩이 속의 한 병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배우지 못하고 막일을 하다가 군대 왔습니다. 우리같은 인생은 군대 와서도 이렇게 밑바닥 막장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습니다.”

불공평에 젖어 너무나 익숙해진 것 같았다.

순찰로를 걷다 보면 가까이 인민군 초소가 보이기도 했다. 싸리가지로 위장한 움막에서 밥을 짓는지 연기가 피어올랐다. 희미하게 동이 틀 무렵 인민군 병사 몇 명이 땅바닥에 엎드려 기합을 받는 걸 봤다. 그들은 내가 지나가는 걸 보자 얼른 참호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공포에 떠는 북한군의 실체였다. 그런 걸 보면서 겁이 없어졌다.

나는 철책선으로 들어가기 전에 권총의 탄창에 실탄을 하나하나 채울 때 계시같이 이런 생각이 들어왔다.
‘나는 대한민국 국군의 장교다’

그런 자각이었다. 만약 적에게 생포될 경우 비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자살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침몰하는 군함 갑판에 서서 죽음을 선택하는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 장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전방지역에서 근무하면 모두들 속칭 ‘깡’이 세지는 것 같았다. 한밤중 북에서 한 발의 총성이 울리면 우리 측에서는 발칸포로 백배 천배 되갚아주는 것 같았다. 한 병사의 얘기로는 잠시 쐈는데도 탄피가 한 가마니 나오더라고 했다. 바람이 북쪽 방향으로 불면 들에 불을 질러 북쪽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북을 무서워하는 건 후방에서 편하게 지내는 사람들 얘기지 최전방에 있어 보니까 그렇지 않았다.

최전방에서의 그 경험은 내 삶의 보물이다. 북한을 보는 나의 시선이 좀 다르다고 할까. 경험이란 뭘까. 사과를 한조각 입 속에 넣고 깨물어 본 사람과 인터넷의 검색창에서 찾아본 차이라고 할까. 사과 사진이 나오고 학문적인 설명이 길어도 사과 맛을 표현할 수는 없다.

경험하지 않고 얻은 해답은 펼쳐지지 않은 날개라고 한다. 경험은 내게 당당함과 함께 가짜와 진짜를 알아보는 눈을 주었다. 전방의 겨울을 경험한 후 40년이 지난 어느 날 교대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당시 사단장을 만났다. 그분을 모시고 근처의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모시면서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