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내 경험과 말이 위선이고 거짓이라면…
아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최고야. 뭐든지 돈이 있어야 해”라고 입버릇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돈에 목이 마르다 보니까 무의식적으로 그런 소리가 나온 것 같았다. 아내는 아이들 학교에 가면 변호사집이라고 선생님이 두둑한 돈봉투를 바란다고 했다. 크고 작은 모임에 가도 당연히 변호사인 내가 돈을 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매일 같이 기부하라고, 보험에 들라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심지어 무료 변호를 해주었던 사람들 중에는 나를 찾아와 돈을 꾸어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돈이 없는 나는 힘들고 아팠다. 그런 나의 아픔은 동정은커녕 다른 사람들에게 은근한 기쁨을 주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은 없다고 하면 더 무시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돈 버는 데 꽤나 무능했다. 내가 변호사 개업을 하던 시절은 전국에 변호사가 얼마 안됐다. 법률적 독점의 혜택을 누리던 시대였다고 할까. 그 시절 변호사라고 하면 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에 좋은 양복과 비싼 가죽가방을 든 지성의 상징으로 여겼다.
변호사가 됐지만 주변머리 없는 나는 여전히 가난했다. 여러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30대 초의 가장이었다. 연수원을 같이 나온 동기들은 빚을 내서라도 기사 딸린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비즈니스에서는 그런 과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동전을 내고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돈은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 같이 모두 볼 수 있지만 그걸 잡을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잡을 재주가 없었다. 한번은 나를 아껴주는 선배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사건을 공급받는 파이프를 잘 확보해야 해. 인격이나 전직이 중요한 게 아니야. 교통사고 손해배상 사건을 많이 가져올 수 있는 병원 브로커나 형사, 검찰과 법원 서기, 교도관 같은 사건 브로커를 리베이트로 꽉 잡아놓아야 해. 브로커 하면 욕같이 들리지만 어느 분야인들 그런 영업사원 없이 사업이 될 것 같아? 모두들 겉으로는 점잖은 척 위선을 부리지만 이 판에서 브로커 안 쓰는 변호사 거의 못봤어.”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영업사원이라는 말에 납득이 갔다. 구멍가게 같은 개인 법률사무소로 운영하던 업계에 갑자기 대형로펌 바람이 불었다. 다양한 요소를 갖춘 로펌들이 블랙홀같이 사건을 빨아들였다. 대형로펌은 전직 장관, 경제 공무원, 세무서장, 고위 경찰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고용해 로비와 청탁에 활용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대형로펌에서 일하는 운동권 출신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비까번쩍하게 인테리어가 된 사무실에서 의뢰인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어. 상담을 할 때 사람들을 보면 내 말이나 법률지식보다는 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살피는 거야. 값싼 시계를 차고 있으면 나를 싸구려로 보는 거지. 그래서 억대가 넘는 시계를 차고 있어. 안경테나 옷도 최고를 입고. 그래야 사람들이 돈을 많이 내거든. 거물 고객들의 면면을 보면 해외의 페이퍼컴퍼니를 은밀히 만들어 달라고 하거나 거액의 탈세, 아니면 뒤에서 사고 친 재벌 회장이나 스타의 범죄를 덮는 일이지. 나는 지금 법비(法非)야. 법기술자고 법도둑놈이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추악한 이면은 이런 대형로펌에 모여있지. 그걸 보고 싶어서 취직을 했어.”
그는 로펌의 어떤 일면을 날카롭게 본 것 같다. 그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진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도 있었다. 천재소리를 듣던 고교동창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란 최고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의 만족을 얻도록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고객이 승소를 원하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기술 등 모든 걸 동원해서 이겨줘야 하는 거지. 사람들은 그러니까 돈을 많이 주는 거야. 변호사의 입장에서도 나를 최대한 비싸게 팔아 고액소득을 올려야 하는 거야. 정부에 내는 많은 세금으로 나는 사회에 대한 의무를 했다고 생각해. 운동권처럼 정의와 양심 운운하면 로펌에 있지말고 정치권으로 가야하는 게 아닐까?”
같은 일을, 같은 공간에서 해도 가치관은 달랐다.
나는 어떤 길을 가는 변호사가 될까 고민했다. 기업논리가 지배하는 로펌은 내게 본능적으로 맞지 않았다. 브로커 도움을 받는 것도 명분상으로는 그럴 듯했지만 찜찜했다. 따지고 보면 남의 피값을 중간에서 착취하거나 궁박한 상태의 사람의 돈을 뜯어먹는 공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남들은 황당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 사건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하나님이 보내는 사건은 일단 공짜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나중에 하늘나라에 입국하면 거기서 후불로 받을 마음이었다. 그 쪽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나님은 단번에 돈을 퍼부어 주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분의 신세를 지려면 내가 좀 더 내려가고 낮아져야 했다. 법원 앞 도로 옆에 자그마한 구두박스가 있었다. 지나칠 때마다 한 남자가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노트북 한 대를 놓고 탄원서나 내용증명을 써주고 푼돈을 받는 변호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라해 보일 수는 있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어린 시절 관청 앞 길가에는 ‘대서소’라는 깃발이 보였고 돋보기를 쓴 영감이 서류를 대신 써주고 막걸리값을 벌곤 했다. 그 정도까지 가면 하나님이 괜찮게 생각할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내 나름대로 만든 변호사의 길을 세월 따라 걸었다. 그분은 돈을 벌게 해주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다른 것을 주었다.
초창기 무료변호 사건 중에 대도라 불리던 유명한 절도범도 있었고, 탈주범 신창원도 있었다. 사회적 이슈가 된 여러 사건의 변호사가 됐다. 그런 대로 가족과 먹고 살고 아이들 교육도 시킬 수 있었다. 노년에 신기한 사건도 왔다.
처음 보는 남자가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 내게 말하며 부동산 소송을 의뢰했다. 그는 내게 바닷가 해수욕장 옆의 부지를 보수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엊그제 어떤 분이 당신은 창고를 가득 채우고 바닷가 집에 살아서 좋겠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까 맞는 것 같다.
나는 부자가 됐다. 영혼도 충만하고 마음도 넉넉하다. 노년에 경제적인 걱정도 안 하는 편이다. 돈이 없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번 그분께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그분은 말했다. 내 경험과 말이 위선이고 거짓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