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신실한 촛불’ 밝히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사랑을 품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촛불이 되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그 불이 옮겨질 수 있지 않을까.

외국 언론사 취재팀이 베트남과 중국 그리고 한국의 도시 상황을 몰래카메라로 취재했다. 그들은 베트남에서 스탭진 한 사람을 관광객으로 위장해서 백을 어깨에 걸고 거리를 걷게 했다. 잠시 후 오토바이가 접근하더니 백을 채갔다.

다음 번에는 차 안에 핸드백을 놓아두고 창문을 열어둔 채 있었다. 잠시 후 누군가의 손이 슬며시 차 안으로 들어와 가방을 들고 갔다.

중국의 도시는 뒷골목이 불결하고 아이들이 똥을 싸놓고 있었다. 부모들은 그걸 보고도 치우지 않고 갔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몰래 찍은 한국의 지방 도시 청주의 상황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공원 벤치 앞에 가방을 떨어뜨려 놓고 멀리서 카메라를 대고 살피고 있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떨어져 있는 가방을 보더니 살며시 벤치 위에 올려놓고 갔다. 외국 언론사 취재팀은 그걸 보면서 놀라는 모습이었다.

이번에 그들은 여행객을 위장해서 길가는 노인에게 길을 물었다. 영어를 못하는 노인은 지나가는 청년을 불러 도와주게 하고 앞장서서 열심히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스탭진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흘러드는 것 같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임신한 여성 한 사람을 내세워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으로 가게 했다. 그리고 줄의 제일 앞사람에게 양보를 부탁하게 했다. 제일 앞에 있던 사람이 선뜻 승락하더니 줄의 맨 마지막으로 가서 섰다. 두번째로 서 있던 사람이 앞사람이 뒤로 가서 맨 뒤에 서는 걸 보고 그도 다시 뒤로 가서 앞에 섰던 사람의 뒤에 섰다. 세번째 사람도, 네번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언론사 취재팀은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은 좋은 나라”라고 했다. 어떤 도시의 한적한 곳을 밤에 돌아다녀도 안전하다고 소개했다.

그런 환경에 익숙해진 나는 외국 방송의 한국 칭찬이 어색했다. 문득 내가 잊고 있던 세월 저편의 일들이 떠올랐다. 서울 시내는 소매치기가 들끓었다.

검정 교복을 입던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옷을 사입어야 했다. 어머니가 내게 점퍼를 사주기 위해 나와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명동의 버스정류장에 내릴 때였다. 어머니가 누군가와 갑자기 몸이 부딪쳤다.

“죄송합니다.”

어머니와 부딪친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공손한 예의와는 다르게 그의 인상이 험했다. 까칠한 머리가 철사발 같이 솟아 있고 눈빛이 강했다. 몇 걸음 걷다가 어머니가 지갑이 없어진 걸 발견하고 자지러지게 소리쳤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은 어디를 가나 그런 소매치기가 들끓었다.

공공질서도 엉망이었다. 극장표나 기차표를 사려고 줄을 서도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뻔뻔하게 남의 자리 앞에 끼어드는 새치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승진도 새치기를 하지 못하면 무능함으로 찍히던 시대였다.

길거리에 놓인 쇠로 된 맨홀뚜껑이 없어지고 전봇대 위의 전선이 도둑맞던 세월을 살았다. 유원지에는 깡패들이 득실거렸다. 데이트하는 우리들에게 시비를 걸고 두들겨 패는 세상이었다.

그때와 비교해 보니 나는 천지가 개벽한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바닷가를 산책하다 파도에 휩쓸려 들어와 바닷가에 버려진 낚시바늘을 줏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남이 다칠까 봐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미국의 대학에서 평생 교수를 하다가 한국의 실버타운으로 온 한 노인은 산책을 할 때 마대자루와 집게를 가지고 쓰레기를 주우면 좋겠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일본의 유명한 야구선수 한 사람은 운동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우면서 그건 버려진 행운을 줍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2년 전쯤부터 공중목욕탕을 갈 때마다 태도를 고친 게 하나 있다. 목욕이 끝나면 깔고 앉았던 작은 플라스틱 의자를 물로 닦은 후 그것이 원래 모여 있던 곳으로 가져가 그 위에 포개놓는 것이다. 샤워기로 수도꼭지에 묻은 비누 거품도 닦았다.

얼마 후 보니 포개진 목욕의자들이 소리없이 늘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거창한 계몽구호나 선전보다는 각자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아주 작은 선행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 아닐까. 사람들의 정신도 변할 것 같다. 사랑을 품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촛불이 되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그 불이 옮겨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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