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경찰청장의 죽음…그를 구속시켰던 검사는 무얼 생각할까?
며칠 전 경찰청장을 했던 그의 부고를 받았다. 그는 한(恨)을 품고 죽었을 것 같다. 그는 자기를 수사했던 검사를 고소했다. 그 수사는 불이 붙지 못하고 지지부진 하다가 꺼져버렸다. 그의 한(恨)은 변호사였던 나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
그는 관직을 마친 후 한 선거에 입후보자로 등록했다. 여론조사 결과 당선이 틀림없을 정도였다. 그는 자기의 표밭을 착실히 다져 나갔다. 갑자기 변수가 생겼다. 청와대 출신이 유력한 경쟁후보로 등록을 한 것이다. 당선이 눈앞에 보이던 그에게 먹구름이 끼었다.
투표 며칠 전 갑자기 그의 집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들어오고 과거 뇌물혐의에 대한 검찰의 전격 수사가 개시됐다. 대학 동기인 나는 그의 변호사가 되었다. 그의 담당검사가 그와 변호사인 내게 말했다.
“저는 지금 정무를 하는 거지 수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 뇌물죄로 엮어서 감옥으로 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선거에서 후보를 사퇴하라는 소리였다. 그게 우리 정치의 이면이기도 했다. 젊은 검사는 나이와는 달리 노련했다.
그를 “청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정중하게 대했다. 끼니때가 되면 음식을 배달시켜 그와 함께 같이 먹었다. 회유와 은근한 협박을 병행하는 것이다. 한 검사장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검찰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을 잡으려고 하면 누구나 범죄인으로 만들어 구속할 수 있어요. 선출직들은 거의 다 원죄를 지고 있으니까. 찍으면 죄인이 되고 적당히 넘어가주면 깨끗한 선량이 되는거지. 국회의원 몇명 잡아넣는 방법으로 정계 개편도 할 수 있다니까.”
박정희 대통령 당시 정보부에서 하던 정치공작을 검찰이 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보기관이 권력을 장악하고 검찰까지 조정하고 통제한 적이 있었다. 검찰은 정보기관의 하수인이었다. 민주화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국민들이 투쟁을 벌여 정보기관의 정치를 막고 법치를 확립했다. 법치와 함께 이지러졌던 검찰권이 확립됐다. 국민이 만들어 준 검찰권이었다. 그런 검찰이 정보기관이 음지에서 하던 정치공작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경찰청장을 지낸 친구에게 버티라고 했다. 그는 20만에 가까운 경찰병력의 사령관이었다. 그 정도의 파도는 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이권 근처에는 가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가 버티자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나는 영장을 심사하는 법정에서 그 사건의 본질은 정치공작임을 주장했다. 이미 정해진 경로를 따라 그의 운명이 휩쓸려 가는 것 같았다. 그가 구속 되는 순간 담당검사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면서 “이걸 어쩌나 우리 불쌍한 청장님” 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능숙한 연기 같았다.
구속이 된 후 검사는 자백조서를 작성하고 그에게 서명을 요구했다. 변호사인 나는 그에게 서명을 거부하라고 했다. 그 검사는 변호사인 나를 따로 불러놓고 말했다.
“저도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이렇게 합니다. 매일 보고하고 지침을 얻어야 합니다.”
담당 검사는 경찰청장이었던 친구와 늙은 변호사인 나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나는 타협하지 말라고 친구에게 권유했다. 그 다음날 내가 갑자기 해임을 당했다. 나는 구치소로 그를 찾아가서 그 이유를 물었다.
“내가 정말 창피해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 죄수복을 입고 수갑에 포승을 한 나를 버스에 태워 데리고 가는 도중 도로에 내리게 하더라. 내 부하였던 경찰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조리돌림을 하는 거야. 경찰들이 자기네 총수였던 나를 보는 눈이 착잡하더라구. 나는 힘들어서 더 못 버티겠어. 그리고 담당검사는 변호인인 네가 형편없이 무능한 인물이니 해임시키라고 하더라. 그리고 자기 친구인 변호사를 선임하면 좀 봐주겠다고 하더라.”
더러운 정치판이 법조계로 옮겨진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고 경쟁상대가 당선이 됐다. 그들의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무리하게 뇌물죄로 기소했던 검사는 공소장을 변경해서 그 죄를 없애버렸다. 그런 행태를 보면서 나는 정말 화가 났다. 그들은 법을 가지고 반칙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권투시합에서 한쪽 선수의 팔을 묶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심판은 그 걸 외면하고 상대편 선수에게 승리를 선언한다. 그가 고소하고 다녔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홧병은 아닌지 모르겠다. 담당검사가 그의 영전에 사과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 글을 보면 전부 허위라고 할 것 같기도 하다. 저승으로 간 친구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젊은 검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