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마약 연예인을 위한 변명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은 대개 그 전개 과정이 비슷하다. 요즈음 마약사건으로 화제가 되어 있는 탤런트 이선균씨의 경우도 그런 것 같다. 나는 마약 사건을 수사하는 국가나 그걸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영화 <기생충>에서 열연한 배우 이선균씨

한 유명 가수의 마약 사건을 취급한 적이 있었다. 연일 집중적인 언론보도 속에서 그는 발가벗겨진 채 진흙탕에서 뒹굴었다. 그가 뭉개져 가는 과정은 실황중계같이 대중의 흥미 거리였다.

연예인들의 마약 사건은 대개 그 전개 과정이 비슷하다. 요즈음 마약사건으로 화제가 되어 있는 탤런트 이선균씨의 경우도 그런 것 같다. 나는 마약 사건을 수사하는 국가나 그걸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마약 사건의 타겟은 마약조직이고 본질은 국민건강이다. 왜 연예인이 타겟이 되어 날아오는 돌을 맞고 침뱉음을 당해야 할까. 희대의 엽기 살인범보다 더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뒤에서 뉴스를 만드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국민들에게 연예인을 때려잡는 서커스를 제공하면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무엇인가 덮고 넘어가고 싶은 정치적 이슈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변호사를 오래하다 보니 마약 사건도 그 종류와 죄질이 다양한 걸 알게 됐다. 내가 변호를 맡았던 가수는 라이브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면 파김치가 될 정도로 몸이 피곤했다. 어느 날 무대에 오르는 그에게 같이 음악을 하는 기타리스트가 드링크제 한 병을 주었다. 그걸 마시고 무대에 올라가 보니까 펄펄 날 것 같이 기운이 났다. 음악적 감성도 훨씬 예민해져 그는 멜로디의 바다를 유영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뒤늦게야 그 드링크 속에 마약 성분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눈치챘다. 더 이상 마시지 않았다. 그 무렵 수사기관에 마약 판매책이 검거됐다. 수사기관은 언론에 보도될 만한 인물을 불면 처벌을 면하도록 해주겠다고 흥정했다. 잔챙이보다 사회적 이슈가 될 인물을 잡아야 수사실적이 돋보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변호를 맡았던 그 가수가 법의 도마 위에 올랐다. 온 세상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안 건 안 거였다. 변명할 말이 없었다. 처벌을 받았다. 그 사건을 맡아 변호하는 과정에서 가수 중에는 예술을 위해 마약의 환각효과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다. 마약을 한 상태에서 작곡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나는 법과 예술은 또 다른 별개의 차원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을 지르고 무덤을 파헤치면서 광염소나타를 작곡한 예술가를 그린 문학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처벌을 각오하고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도덕적 법적 잣대를 굳이 고집할 수는 없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순진하게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60, 70년대 최고의 가수 김추자씨는 목이 아플 때 피워보면 좋다는 말을 듣고 대마초 한대를 받아 빨아보다가 기침이 나서 그냥 재떨이에 버렸다고 했다. 그 꽁초가 증거가 되어 가수생활이 붕괴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기와 과정이 다 다르다. 이 의원, 저 병원 돌아가면서 프로포플을 맞으러 다니다가 걸려 재판을 받는 경우가 있다.

프로포플을 놓아주고 돈을 받은 의원들은 정말 그런 사람들의 존재를 몰랐을까. 돈 받는 재미에 모른 체한 것은 아닐까. 제약회사는 매상이 잘 오르는 마약류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진짜 처벌을 받아야 할 놈들이 법망을 비웃으면서 환각파티를 즐기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오래 전 한 여배우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녀는 신문에 난 한 국회의원의 정치선전을 보고 분노하면서 내게 말했다. 그 정치인이 재벌2세들 몇 명과 마약 파티를 하는 자리에 그 여배우가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여배우는 그런 사실들을 확 불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마약파티를 해도 법에 걸리는 걸 보지 못했다. 아마 돈으로 수사기관을 환각상태에 빠지게 하는지도 모른다. 검사가 룸살롱에서 잔에 히로뽕을 묻혀 마신다는 정보를 접한 적도 있다. 재벌이나 국회의원, 검사의 마약파티를 잡을 존재는 없다. 법망에 잡히는 것은 피래미들이거나 어정쩡한 연예인뿐이다.

성공한 한 연예인의 붕괴과정을 대중에게 보이는 잔인한 서커스는 더이상 흥행이 되어서는 안된다. 살인범의 얼굴은 가려주면서도 공인이라는 포장을 뒤집어 씌우고 잔인하게 두들겨 패는 것은 이 사회의 이중적인 인격이다. 그 이면에는 드라마 한편을 찍는데 몇억원 광고 한편에 수십억원을 버는 데 대한 시기와 질투가 잠재해 있는 건 아닐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