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두 가지 평화
변호사를 처음 할 때 스승 같던 변호사가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였다. 평생 변호사를 해 온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는 말이야 사건을 맡은 의뢰인의 형이 선고되기 전날 밤 마음 졸이는 고통만 해도 받은 돈 값은 다해주는 것 같아”
결과를 놓고 그만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라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나 재산을 다루는 일이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수술 못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의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환자가 죽으면 그 의사의 멱살을 붙잡고 폭행을 하기도 하고 소송을 걸기도 했다.
스승 변호사의 말을 몸으로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맡은 사건의 선고 때만 되면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의뢰인의 가족들은 한밤중에도 전화를 걸어 변화가 없느냐고 물었다. 밤이면 판사도 자야지 변화가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은 마음의 안정까지 변호사에게 의뢰하는 것 같았다.
사건을 맡은 게 아니라 그들의 인생을 떠맡은 부담감이 들 때가 많았다.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형이 선고되면 모두 변호사의 탓이었다. 그들에게 실컷 당하고 나서는 나는 돈을 받고 욕을 먹고 매를 맞아주는 감정노동자가 아닌가 하는 회의를 느낀 적도 있다. 그런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쓰러진 변호사도 있었다. 이웃의 변호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친구가 구속이 되서 그 변호를 맡았어요. 그런데 친구의 어머니가 매일 같이 제 사무실로 출근을 하는 거예요. 하루 종일 구석 소파에 앉아서 나만 보면 우리 아들 접견을 갔다 왔냐, 판사를 만나 부탁을 했냐, 무슨 말을 나눴냐 시시콜콜 물으면서 돌아가지를 않아요. 친구의 어머니니까 참으면서 위로하다 보니 어느새 감정이입이 돼서 내가 감옥에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가 선고 날이 가까웠는데 갑자기 안면마비가 오면서 내가 쓰러진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때 하도 혼이 나서 다시는 형사사건 변호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는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감옥에 들어가고 재산을 편취당하고 수많은 억울한 사정을 마주하는 직업이었다. 동시에 수십 개의 그런 사건들을 맡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하루 종일 마음이 출렁거렸다.
나는 소심한 성격이었다.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싶었다. 살아오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린 적이 있었던가? 언제 그랬었지, 돌아보니 아주 소극적인 마음의 평화를 몇 번 누리기는 했다. 입시나 고시준비를 하다가 합격하는 순간 짧은 평화를 맛보았다. 소송에서 치열하게 다투다가 이기는 순간 휴우 하고 한숨을 쉬면서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나는 거센 파도가 되어 매일 밀려오는 스트레스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도망갈 길이 없었다. 먹고 살아야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다.
나는 조용한 나의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었다. 50대 초쯤이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기회가 왔다. 어려운 사건을 맡아 싸운 후 비교적 큰 보수를 받았다. 요즈음 언론에 떠드는 ‘50억클럽’이라는 돈 잘 버는 변호사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나의 잣대로는 만족했다.
아껴쓰고 소박하게 살면 5년은 일거리 걱정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 돈을 지급한 회사의 사장을 찾아가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현실에서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돈이었다.
일흔 고개를 넘고 이제 변호사 생활도 졸업할 때가 됐다. 엊그제는 변호사 사무장을 하던 80대를 바라보는 아는 분이 내게 카톡으로 이런 내용을 보내왔다.
‘며칠 전 제가 교대 쪽에서 점심을 먹고 파리바게트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문으로 노인들이 들어오는 겁니다. 어깨가 축 쳐지고 허리가 굽고 얼굴에는 온통 검버섯이 들어차 있더라구요. 가만히 보니까 과거 쟁쟁하던 검사장님과 대법관님들이었어요. 우리 표현으로 하면 산천초목을 떨게 한 분들이죠. 그 분들이 내 옆자리에서 차를 드시면서 하는 말을 들었는데 변호사 사무실을 접고나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마땅치 않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그분들이 잘 나가던 그 시절 자신의 미래인 오늘의 외로움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분들에게 그때 그 시절을 잘 사셨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었죠.’
정말 중요한 건 지위나 돈으로 얻는 짧은 평화가 아닌 것 같다. 높거나 낮거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만족하고 감사하는 차원 높은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했다. 그걸 가지고 있었다면 일생이 행복할 것이다.
나는 요즈음 와서야 ‘올 것은 오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늙음이 오고 외로움이 오고 병이 오고 죽음이 온다. 또 어떤 일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좁았다. 그분은 ‘될 건 되게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실패는 길과 방향을 바꾸라는 그분의 메시지였다.
완전한 정신의 평화는 받아들임에 있었던 게 아닐까. 그 분은 모든 걸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면서 양팔을 벌리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건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라는 영혼의 메시지가 아닐까. 진정한 정신적 평화는 그렇게 얻어야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