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힘없는 정의
대통령이 될 뻔했던 이회창 후보의 자서전을 읽었다. 직접 그가 쓴 원고들 중에는 의미를 던지는 에피소드들이 있었다. 그가 고교 시절 길을 가는 데 깡패들이 여학생을 희롱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덩치가 왜소하고 싸움을 할 줄도 몰랐다. 그는 깡패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실컷 두들겨 맞고 코뼈까지 부러졌다. 자서전에서 그는 “힘이 받쳐주지 않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더라”고 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담임선생이 저녁에 남으라고 했다. 나는 그가 싫었다. 그는 돈 많은 집 아이가 반장이 되도록 노골적으로 유도했다. 부자집 아이들을 모아 개인과외를 하기도 했다. 그는 과외를 맡은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문제지와 답안지까지 빼돌렸다.
반면 학교에서 나 같은 평범한 집 아이들에게는 전혀 성의가 없었다. 그런 사실을 안 나는 철없이 그에게 시험문제와 답안을 빼돌리지 말라고 했다. 그가 더 이상 선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그가 방과 후 나를 보자고 했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텅 빈 학교의 숙직실 주변은 적막했다. 그곳에서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얼굴 쪽으로 주먹을 날렸다. 연이어 배로 훅이 들어오고 선생은 권투선수같이 나를 두들겨 팼다. 발길이 날아들었다.
“이 새끼가 내 약점 잡았다고 까부는 거야?”
그가 나를 짓밟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바른말을 했을 뿐인데 엄청난 폭력이 돌아왔다. 폭력보다 무서운 것이 있었다. 내가 그와 맞서 싸우면 원인이야 어떻든 퇴학이 틀림없었다. 나는 가난하고 고생하는 엄마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떡이 되도록 얻어맞았다.
힘이 없으면 틀린 걸 틀리다고 해도 당하는 세상인 걸 알았다. 세월이 육십년 가까이 흘렀다. 그 선생이 살아있다면 한번 만나 저녁이라도 모시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앙금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원래 세상은 그런 면이 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당한 경험과 비슷한 현실을 마주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다. 수업 시간에 교사가 장애아를 “병신”이라고 부르며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걸 옆에서 보던 한 아이가 일어나서 “이건 아니죠”라고 항의했다. 선생이 “이 새끼 봐?” 하면서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선생이 항의한 아이의 따귀를 때렸다. 선생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항의를 한 학생에게 방과 후에 남으라고 했다. 더 때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간 텅빈 교정의 구석에서 교사와 학생이 마주 서 있었다. 학생이 선생에게 물었다.
“이건 선생과 학생의 관계가 아니고 남자대 남자로 맞짱 뜨자는 거 아닙니까?”
“그렇다 새끼야”
“알겠습니다. 저 오늘 맞아 죽어 보겠습니다.”
둘 사이에 격투가 벌어졌다. 그 사실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은 채 세월 속에 묻혀졌다.
그 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대기업의 인사 담당 직원이 됐다. 어느 날 청와대에서 그 회사의 사장과 인사담당 임원에게 연락이 왔다. 특정 정치인의 아들을 취직시키라는 압력이었다. 청탁받은 사람을 채용해서 좋은 보직을 주면 앞으로 회사에도 여러 가지 도움을 주겠다고 암시했다. 그 말은 동시에 은근한 협박이기도 했다. 그는 고민을 했다. 공정한 경쟁을 파괴하는 행위였다. 청와대가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언론사에 제보했다.
사회적 파장이 일었던 사건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었다. 나는 폭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나는 비겁했다. 대부분은 저항하기 힘든 권력에 굴종하면서 적당한 이익을 탐한다.
사기업에서 정의나 합법은 이익 다음 순위였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타고난 불같은 성격인 것 같았다. 정의 주변에는 짙은 피 냄새가 감도는 것 같다. 성경 속의 세례요한은 왕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하다가 목이 잘려 하룻밤 술 자리의 노리개 감이 됐다. 예수는 성전을 더럽히는 장사꾼의 상을 뒤엎어 버리고 당시 종교기득권층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했다가 사형대인 십자가 위에 올라갔다. 나도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