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정욕…”도망가지 말고 무릎 꿇고 참회하라”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어느날 그는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욕망을 고백하면서 잘못을 빌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면에 들러붙어 있던 질척한 욕망이 순간 증발해 버린 걸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정욕을 과감히 다스렸다. 의지력이 강했다.”(본문 가운데)

대통령을 꿈꾸던 도지사의 여비서가 어느 날 방송에 나와 도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했다. 순간 그의 꿈은 무너져 내렸다. 서울특별시장의 여비서가 시장의 성추행을 고소하려고 준비했다. 그 말이 전해지자 시장은 쫓기듯 도망을 간 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하나하나 쌓아온 성벽이 일순간에 붕괴됐다.

대통령후보로 나선 야당 대표와의 성관계를 폭로한 여배우도 있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제어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힘일까. 정욕에 걸려 수많은 사람들이 침몰했다. 오랜 세월 변호사를 해오면서 치정사건을 많이 처리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성관계를 폭로하겠다는 여성도 있었다. 수치를 무릅쓰고 성폭행을 폭로하는 여성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진한 배신감을 엿보았다.

이런 사건이 있었다. 미모의 여성 세명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현직 대사를 성폭행으로 고소하고 언론에 공개해달라는 것이었다. 내용을 알아봤다. 그 여성들은 각각 별개의 피해자라고 했다. 그들은 독신으로 지내는 중견의 미남 외교관을 좋아했다.

그들은 몸도 마음도 그에게 바쳤다. 언젠가 대사 부인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막상 그가 대사가 되어 현지에 부임하자 발표가 된 결혼 대상은 전혀 다른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그 시절은 ‘혼인빙자 간음’이라는 죄가 있었다. 우연히 비슷한 희망을 품었던 세 여자가 의기투합해서 대사의 명줄을 끊어놓기 위해 나의 사무실을 찾아온 것이다.

내가 고소장을 제출하면 출입기자의 눈에 띌 것이고 그 대사의 공직 생활은 큰 상처가 날 게 틀림없었다. 수십년 쌓아온 탑도 무너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의뢰인 여성들의 양해 하에 그 대사에게 서신을 띄웠다. 일정 시간을 줄 테니 그 사이에 빌든지 그들을 달래든지 해서 불행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얼마 후 세 여자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사무실로 나타났다. 그들은 모든 걸 없던 상태로 해달라고 했다. 대사가 번개같이 국내로 들어와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 같았다. 대단한 능력을 가진 대사였다. 아마도 가슴속이 서늘했을 것이다.

나의 세대는 어려서부터 정욕을 제어하는 교육을 받은 셈이다. 억제력에 길들여져 왔다고 할까. 그러나 그것은 길들여지는 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막으면 어디론가 더 강한 에너지가 되어 분출하는 성질의 것이었다. 정욕은 심한 고통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롭고 떳떳하게 살아가려면 정욕은 제어되어야 했다.

나는 젊은 시절 정보기관에서 몇 년을 근무한 적이 있다. 정보기관은 주요 인물들에 대해서는 불륜과 돈 관계를 은밀히 파악해서 기록해 두고 있었다. 거기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평검사 때 자주 들렀던 까페 마담과의 관계가 검찰총장이 될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말단 검사 때 받은 뇌물도 액수까지 기록되어 전산화되어 있는 걸 보기도 했다.

룸살롱 미녀 호스테스들의 상당수는 정보기관의 첩보원 역할을 겸했다. 제어되지 못한 정욕은 보이지 않는 손에 끌려가는 목줄일 수 있었다.

자유롭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정욕과 물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했다. 약점이 없어야 했다. 그 약한 부분을 노리는 존재들은 우글거리고 있었다. 진흙밭의 개싸움을 하는 선거전에 나가는 정치인들은 특히 그 부분이 급소였다.

윤리성이 강한 종교인들은 어떨까? 한 목사의 이런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매일 새벽기도를 주관하는데 이상하게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을 보니까 음욕이 일어나더라고 했다. 그 욕망은 누를수록 속에서 팽창했다. 새벽의 조용한 예배당에 그녀와 둘만 있는 날도 있었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어느날 그는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욕망을 고백하면서 잘못을 빌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내면에 들러붙어 있던 질척한 욕망이 순간 증발해 버린 걸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정욕을 과감히 다스렸다. 의지력이 강했다.

정욕을 이겨낼 수 없는 경우를 당하더라도 낙심해서는 안될 것 같다. 정욕을 과감히 다스릴 때 의지력도 강해진다. 정욕을 이겨낼 수 없는 경우를 당하더라도 낙심해서는 안될 것 같다. 성경 속 대표 인물인 다윗이나 솔로몬은 정욕을 제어하지 못한 인물의 표상이다. 성경은 죄 자체인 인간의 본질을 알려주면서 도망가지 말고 무릎 꿇고 참회하라고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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