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그날 묵호역에서 생긴 일
묵호역에서 밤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옛 정취가 남은 작은 역이었다. 묵호역에 있을 때면 문학 속의 작은 시골역이 떠오른다. 늙은 역장이 추운듯 손을 부비면서 창가로 다가가 소리 없이 떨어져 쌓이는 송이눈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냉기가 서린 역사 안에는 몇명의 승객이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역장은 구멍이 뚫린 무쇠난로에 톱밥 한 삽을 퍼넣는다. 불길이 피어오른다. 묵호역도 문학작품 속의 그 역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늙은 역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올 것 같다.
스산한 바람이 불던 지난 가을 어느 날이었다. 나는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묵호역으로 들어갔다. 벽 아래 있는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는 순간 나는 거기 꽂혀 있던 몽당연필이 없어진 걸 확인했다. 나는 잠시라도 시간이 있으면 내 나름의 기도 방법이 있다. 성경 속의 ‘시편 23장’을 연필로 한자 한자 정성들여 쓴다. 주문처럼 웅얼거릴 수도 있고 노래할 수도 있다. 나의 개인적 취향으로는 연필로 쓰는 게 상념이 없어지고 좋은 것 같았다.
창구에 있는 여직원에게 연필이 있으면 잠시만 빌려달라고 했다. 여직원은 필통을 뒤져 몽당연필을 하나 찾았다. 그녀는 카터칼로 연필을 깎고 심을 갈아 뾰족하게 해 주었다. 그녀는 참 오랫만에 연필을 깎아 본다고 했다.
시골역 그 여직원의 착한 마음에 감사했다.
엊그제는 어둠이 짙게 내린 저녁시간 기차를 타기 위해 묵호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형광등이 파랗게 비치는 대합실 벤치에서 배낭을 옆에 놓고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시편 23장’을 썼다. 얼마 전 내게 글로 자주 조언을 주는 분이 만번을 써보라고 권했다. 그러면 놀라운 기적을 볼 것이라고 했다. 괜찮을 것 같아서 감사하게 그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노년의 끊임없는 기도는 나름 아름다운 생의 마무리 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기차의 아스라한 불빛이 반짝이는 두 줄의 선로를 타고 플랫폼으로 소리 없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기차에 올라 내 자리에 앉았다. 순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옆에 노트북이 들어있는 배낭이 없는 걸 보고 아차 하고 낭패감이 들었다. 기차가 스르르 미끄러지듯 출발하고 있었다. 노트북 안에는 지난 20여년 써 온 원고와 변론서들이 들어있었다. 나의 전재산이었다.
게으른 성격에 백업을 해두지도 않았다. 내가 치매인가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역인 정동진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다시 묵호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때마침 내 옆을 지나가는 여성승무원에게 사실을 얘기했다. 그녀가 묵호역으로 바로 무전을 쳐서 물어보겠다고 했다. 잠시후 그녀가 내게 와서 말했다.
“묵호역 대합실 벤치에 가방이 그대로 있다고 하네요. 다음 열차로 가방을 보내겠다고 하네요. 청량리역에서 기다리시다가 가방을 찾아가시죠.”
나는 잃어버린 자식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청량리역에 먼저 도착해 가방을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광장에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밤 12시 가까울 무렵 광장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만 멀뚱히 서 있었다. 높은 천정에 달린 파란 등이 묵묵히 바닥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도와드릴까요?”
지나가던 경찰관이 무슨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가 덧붙였다.
“노인이 광장에 혼자 서 계셔서 걱정이 되서 여쭸습니다.”
그 경찰관은 진심으로 나를 보살피는 따뜻한 표정이었다. 다음 기차가 도착했다는 전광판의 표시가 깜박거리고 있었다. 역무실의 야간 당직인 승무원이 기차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잠시 후 그 직원이 내 노트북이 든 배낭을 가져다 기다리고 있던 내게 건네주었다. 밤 12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나의 아파트로 가면서 참 좋은 나라에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난하고 각박하고 무질서한 예전의 나쁜 나라에 살아봐서 그걸 안다. 성실한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나라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