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미신과 신앙

세상에는 수많은 영적인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 같다.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렸다.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 영이 되어 사람들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길을 걸어가는 바울에게 예수의 영이 찾아왔다. 바울은 죽을 때까지 예수의 영에 이끌려 다니며 사명을 수행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이 뭘 한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예수의 영이 한 것인지도 모른다.(본문 가운데)

변호사를 하다 보니까 무당도 만나고 승려나 목사, 신부 그리고 민족종교의 도인 등 다양한 종교인들을 만나곤 했다. 이단이라고 하는 단체의 교주도 만나고 때로는 귀신이 들렸다는 사람들도 봤다. 직업상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경전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대체로 영적 세계와 다양하게 연관을 맺고 있는 것 같았다.

살인죄로 재판을 받는 남자 무당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절대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했다. 법정에 나온 증인은 그의 범행을 목격했다면서 확신을 가지고 두번 세번 진술했다. 살인의 동기나 정황이 그가 살인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유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그는 살인을 했다는 인식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거짓으로 그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한번은 그의 이런 고백을 들었다.

“내가 10대일 때 우리집 논이 공동묘지 근처에 있었어요.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 논에서 일을 하다 보면 묘지에서 소리가 들렸어요. 어느 날 뭔가에 홀려 집을 나갔죠. 30년간 태백산의 굿당을 다니다가 무당이 됐죠.”

그는 접신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이런 체험을 얘기했다.

“한번은 길을 가는데 일곱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혼자 있더라구요. 길을 잃은 아이였어요. 손을 잡고 가다 보니까 길가에 떡장수가 있었어요. 떡을 하나 사서 아이 손에 쥐어줬어요. 그리고 길을 계속 걸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는 없어지고 나 혼자 떡을 손에 들고 쫄쫄 빨고 있더라구요.”

그 계집아이가 그에게 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속에 있는 다른 존재가 범행을 저지른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속에 들어간 그 존재는 그를 지옥구덩이로 끌고 들어갔다. 이유가 뭘까. 더러 사람들에게 여러 종류의 귀신이 씌운다고 한다. 배고팠던 귀신이 들어오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 음욕을 가진 귀신이 씌우면 하루종일 그 생각만 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그에게는 어떤 존재가 들어있을까. 그가 월남전에 참전해서 잔인하게 사람을 죽인 사실이 있다고 그의 동료가 말하는 걸 전해 들은 적은 있다. 나는 그런 걸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건전한 종교의 영역으로 가야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리고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알고 평안을 얻게 된다고 믿는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평생 걷지 못했던 그가 노년이 되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은 다 멀쩡한데 나는 왜 평생 장애를 가지고 힘겹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에 지은 업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는 해석 이외에는 도저히 납득 할 수가 없는 거야. 그렇게 받아들이니까 편해. 내가 이생에서 선을 쌓으면 다음 생에는 막 달릴 수 있을거야.”

그는 업과 인과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간은 전생에서 흘러와 이승을 살다가 다시 윤회해서 다음 생을 사는 것일까. 고(苦)의 바다인 이 세상을 건너가는 걸 ‘바라밀’이라고 하던가.

기독교에서도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고 외국인이라고 했다. 본래의 고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육십 평생을 식물인간같이 지내고 있는 여성의 변호사가 된 적이 있다. 그녀는 나에게 단 십분이라도 온몸이 꽁꽁 묶인 채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 보라고 했다. 정신은 멀쩡한데 육십평생 자신은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혼자 먹지도 못하고 화장실을 가지도 못하는 살덩어리로 살았다고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손가락 두 개였다. 그 두개로 연필을 잡고 글을 배워서 세상과 소통하고 시도 썼다. 그녀의 시는 찬송이 되어 천만명이 넘는 신도가 부르고 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의 비밀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판자집 뒤쪽의 어둠침침한 골방에 있는데 삼십대 쯤의 성스러워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어요. 그분이 내게 받아적으라고 하면서 시를 한편 불러줬어요. 공책에 적어 두었던 그 시가 찬송가가 돼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더라구요. 그리고 나는 유명 인사가 됐어요. 내가 먹고 살 돈도 쏟아져 들어오구요. 나를 돌 볼 천사같은 분도 옆으로 다가왔죠. 모든 게 그분의 은혜예요. 나는 예수를 봤어요.”

기적같은 그녀가 겪은 일들을 나는 증명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적인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 같다. 요단강에서 예수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렸다.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 영이 되어 사람들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길을 걸어가는 바울에게 예수의 영이 찾아왔다. 바울은 죽을 때까지 예수의 영에 이끌려 다니며 사명을 수행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이 뭘 한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예수의 영이 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처도 깨우침을 얻는 순간 브라흐만을 만났다는 글을 읽었다. 마호멧도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났다. 동학의 최제우도 강증산도 접신을 한 내용의 기록을 읽었다. 천사도 영적인 존재다. 귀신들도 영적인 존재다. 인간은 그런 영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고 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영적세계의 그분과 관계를 맺고 평안을 얻는 게 신앙은 아닐까. 그분은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와 모든 인간이 형제같이 결합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인도하면서 평안을 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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