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시편 23편을 매일 필사해보니…

나는 요즈음 블로그로 세상과 소통한다. 전해오는 댓글을 통해 다양한 생각들과 가치관이 존재하는 걸 다시 확인한다. 사람마다 쓰고 있는 안경의 색과 자기 속에 가지고 있는 자가 다른 것 같다. 그게 세상이 아닐까. 그러다 같은 색깔로 세상을 보고 비슷한 내면의 자를 가진 분을 보면 반갑다.

시편 23편을 8백번 썼다는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시편 91편을 1만번 암송했다고 한다. 아직 성령의 은총이 뜨겁게 오지 않았지만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지금의 기도하는 방법이 나와 같거나 비슷한 분들이다. 나의 중간 체험을 조금 말씀드리고 싶다.

한 판사의 ‘시편 23편 쓰기’ 경험담을 듣고 처음에 나는 속으로 ‘픽’ 웃었다. 어리석은 미신적인 행위 비슷하게 치부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예전에 종이학을 1천개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종류의 기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나는 다시 생각했다. 그 판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다. 과학적인 마인드로 교육된 상식을 벗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총명한 사람이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고시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했다.

그의 확신을 믿지 않으려는 나는 똑똑한가 바보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학교에서 배워온 단선적인 교과서가 미신같이 나의 정신세계를 제한하기도 했다. 학교 다니던 시절 과학시간에 귀신은 없다, 영혼의 세계도 없다고 배웠다. 증명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했다.

변호사를 해보니 진실도 입증하기 불가능할 때가 있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영적 세계가 있는 것 같다. 천국과 온갖 영들의 존재가 들어있는 성경이 수천년 동안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다. 세계 어느 호텔에 가나 서랍 속에 들어있다. 그걸 연구하는 신학대학과 교회들이 전 세계에 퍼져있다. 영의 세계를 무시하는 게 가장 어리석을 수 있는 것이다.

기도의 방법으로 시편 23편 1천번 쓰기를 시도해 보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이가 한글을 처음 배울 때 사용하는 깍두기 공책을 사서 한자 한자에 기를 불어넣었다. 평소 묵상할 때 내면에 둥둥 떠다니던 먼지 같은 상념이 물을 뿌린 듯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나는 조금씩 야금야금 쓰기로 했다. 횟수에 중점을 두면 빨리빨리 해치우고 싶고 내게 어떤 좋은 것이 올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방해하고 부정하는 목소리도 동시에 들려왔다.

‘웃겨, 무슨 바보 같은 짓이야. 천번을 쓴다고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 그냥 마인드컨트롤이지. 로또복권이 당첨된다면 어떤 놈이 쓰지 않을까? 다 헛짓이야 그 시간에 유용한 다른 게 많은데 뭐하는 거야? ’

나는 그 부정자가 누군지 알고 있다. 살아오면서 수시로 ‘너는 안될 거야 포기해’ 하던 나를 절망시키는 존재였다. 그 존재는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하면서 질투와 시기를 부추겼다.

나는 미련하다고 해도 그냥 시도해 보기로 했다. 더러 지하철에 앉아서 대바늘 뜨개질로 지루한 시간을 줄이는 여성들을 보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써나갔다. 아니면 그만큼 글씨체라도 좋아지지 않을까. 참 그렇고 보니 추사 김정희 선생은 한 일(一) 자를 1만번 쓰면 글자에서 강물이 흘러나온다고도 했다. 종교적인 게 아니라도 뭔가 있을 것 같다. 불교에서도 천주교에서도, 다른 민족종교에서도 사경寫經이나 비슷한 기도행위들이 공통적으로 있는 것 같았다.

1천 번을 쓴 날이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았다. 뜨겁게 성령이 오지도 않았다. 어떤 행운이 온 것 같지도 않았다. 무덤덤했다. 갑자기 댓글이 하나가 왔다. 보지도 않은 나와 내 블러그를 매일 들르며 사랑해 주는 분이었다. 그 분이 나보고 천 번이 아니라 ‘만번’을 쓰라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하나님의 명령 같이 들렸다. 나는 순종하기로 하고 계속했다. 이제 2천번의 언덕쪽으로 왔다. 앞으로 8천번이 남았다. 요즈음 아내가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 놀랄 정도로 많이 달라졌어. 같이 산 나는 알아. 마음이 완전히 변한 것 같아. 전에 보던 당신이 아니야. 시편 23편 쓰기가 정말 효력이 있네”

나는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조금씩 느끼고 있다. 이유를 모르는 기쁨이 내면에서 아지랑이 같이 피어 오른다. 매사에 감사한다. 집을 짓는데 장애가 생겨도 화가 나지를 않는다. 세속적인 나의 눈이 선물을 보지 못했을 뿐이지 그 분은 내 상상보다 더 큰 걸 주신 것 같다. 내 마음이 변하니까 어둡고 적막한 묵호의 밤이 엄마의 뱃속같이 포근한 공간으로 바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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