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결벽증일까?…젊은날 진 빚, 늙어서 갚으려는데

“나는 살아가는 남은 세월에 마음속에 접힌 삶의 주름들을 다리미로 다리듯 없애고 싶다. 그렇게 편해지고 싶다. 내가 모르는 잘못이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한동안 탑골공원 뒷쪽 골목 길바닥에 작은 상을 하나 놓고 지나가는 노숙자나 노인들을 상대로 법률상담을 한 적이 있다. 삶의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상황과 그 의식을 알고 싶기도 했다. 공원 벽을 끼고 파라솔을 하나 펴놓고 점을 치는 것과 비슷한 형태라고나 할까.

머리가 더부룩한 노숙자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은행에서 개인대출을 받고 신용불량자가 됐는데 그 빚은 갚지 않아도 되죠?” 그는 아주 당연한 걸 확인하는 태도였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죠.”
“정부에서 나중에 다 갚아주는 거 아닌가요?”
“본인이 돈을 꾼 거 아니예요? 그러면 빚진 건데 자기 자신이 벌어서 갚아야지 왜 정부가 갚아줘야죠?”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가 다 그렇게 해주는 거라고 하던데”

그는 나의 말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노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의식이 그런 것 같았다. 표를 의식하거나 국민여론을 눈치보는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바른 소리를 하기 힘든 세상이다. 언론도 국민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빚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의식이 퍼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대출받은 빚이 자식에게 상속되고 그 자식들도 끝없는 빚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남은 날이 삶의 잔고가 얼마인지 모르는 시기가 됐다. 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빚진 것이 없나를 꼼꼼하게 살피는 중이다. 내가 떠난 뒷자리에 작은 빚이라도 남는다면 향기롭지 못할 것 같아서다. 빚을 하나하나 떠올려 있다면 갚고 죽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수많은 은혜와 혜택을 받은 것도 빚이다.

그것보다 먼저 현실적으로 남에게 실질적으로 폐를 끼친 것이 있다면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가장 오래된 빚이 하나 떠올랐다. 대학 2학년 무렵 같은 과 친구에게 돈을 꾼 일이 있다. 그 당시속상하는 일이 있어서 학교 앞 주점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사먹으려고 빌린 돈이었다. 그 친구도 꽤나 돈이 없어 보였다. 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접고 접어서 비상금으로 숨겨둔 돈을 내게 빌려 주었다.

자기에게 귀한 것을 선뜻 내주는 그 감동이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서 잔물결이 되어 흘렀다. 그가 외국에서 생활하는 바람에 갚을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40년 만에 귀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내가 꾼 돈을 얼마로 갚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백배 천배로 해서 갚고 싶었다.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돈을 넣어서 사람을 통해 그에게 보냈다. 그는 기억도 못한다면서 펄쩍 뛰었다. 돌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정을 해서 그가 받게 했다. 내 마음의 작은 얼룩이 하나 지워진 기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사기를 친 게 떠올랐다. 내가 땅을 사는 기회에 같이 그 옆 땅까지 잡아 친구에게 사라고 했다. 나는 원가에 주는 거라고 하면서 돈을 더 받았다. 속으로는 중개수수료쯤으로 합리화했다. 친구를 속이니까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항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 ‘너는 친구에게 거짓말을 한 나쁜 놈이야’라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는 알아도 모른 체 하는 것 같았다. 땅의 구입원가가 서류에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불편해서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사기 친 걸 자백하고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받지 않으려고 하는 걸 강제로 주었다. 속이 편해졌다. 살다보니까 빚을 갚을 만한 경제적 능력이 생겼다는 게 신났다. 내가 갚을 빚이 없나를 열심히 생각했다. 그러다 거의 40년 전의 빚이 또 떠올랐다.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 고용 비슷한 형태로 원로 변호사를 모셨었다. 원로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내가 처리했다. 명절 때가 되면 의뢰인이 내게 선물도 보내고 팁같이 슬쩍 돈도 주곤 했다. 생활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회사를 퇴직하고 중풍에 걸린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아내와 어린 아들 딸을 먹여살려야 하는 서른세살의 힘든 가장 역할을 할 때였다. 겉으로는 힘든 티를 내지 않았지만 돈에 목이 말랐다. 미대 출신 아내는 동네 꼬마들을 모아 그림을 가르치면서 푼돈을 벌고 있었다.

나는 의뢰인들이 슬쩍슬쩍 주는 돈을 받았다. 그게 화근이 됐다. 의뢰인 중의 누군가 내게 팁을 준 걸 생색 내면서 자랑하고 다닌 것 같았다. 누군가 상관인 원로 변호사에게 내가 사건마다 돈을 뜯는다고 모략을 한 것 같았다. 나는 돈을 달라거나 그런 비슷한 눈치를 준 적은 없지만, 받았다고 보고를 하지 않고 돈을 받아 쓴 건 잘못이었다.

나는 그 사무실을 나왔다. 40년 가까운데도 나는 자존심의 상처가 흉터로 남아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그 빚을 갚을 능력이 됐다. 아내에게 그 당시 의뢰인에게 받은 돈을 전부 계산해서 그 원로 변호사에게 갚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건 지나친 결벽증이고, ‘자기의’라고 하면서 말렸다.

나는 살아가는 남은 세월에 마음속에 접힌 삶의 주름들을 다리미로 다리듯 없애고 싶다. 그렇게 편해지고 싶다. 내가 모르는 잘못이 있으면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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