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웰 다잉 어떻게 하시려구요?”

대학동기인 친구가 묵호역 근처에 방을 얻어 한 달 살아보기를 실행하고 있다고 했다. 평생을 가족과 회사에 매여 살다가 칠십 고개를 넘으면서 잠시라도 자유롭고 싶은 것 같다. 그와 만나 점심을 함께하면서 그의 얘기를 들었다.

“엊그제는 마을 구석에서 잠시 여는 새벽장에서 염장한 다시마를 샀어. 물에 담궈 소금기를 빼고 반찬으로 먹어 보라는 거야. 냄비에 밥을 해서 같이 먹었는데 담백하고 괜찮더라구. 청소도 하고 전기세탁기도 돌리고 살림을 배우고 있어. 회사 다닐 때 모든 걸 아내가 다 해줬는데 이제 살림도 나눠서 해야겠지?”

퇴직을 하고 늙은 아내와 같이 사는 그는 적응력을 높이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분은 아내가 갑자기 죽으니까 집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더라고 했다. 살림을 알고 적응하는데 1년이 걸렸다고 했다. 친구가 얘기를 계속했다.

“열심히 묵호 주변을 돌아다녀 봤어. 특이한 사람들이 많더구만. 추암 해변가에 혼자 앉아 바다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는 남자를 봤는데 눈이 마주치니까 술 한잔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구. 사람들이 마음 문을 확확 열더라구”

나도 산책을 하다가 나이 지긋한 사람이 귤을 주는 걸 받아먹은 적이 있다.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한달 살아보기를 한 친구의 결론은 이랬다.

“나이 칠십인 우리 또래가 되면 구태어 서울에서 살 필요가 없어.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동해 바닷가에 와서 싼 아파트를 사면 차액으로 나머지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다는 걸 발견했어. 문제는 사람들이 막연한 불안 때문에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딛지 못한다는 거지.”

같이 점심을 먹고 나는 그를 데리고 옥계에서 신선같이 사는 분의 작은 집으로 갔다. 50대 중반 회사를 퇴직하고 동해 바닷가 마을인 옥계로 내려와 80대가 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분이었다. 짙은 바다안개가 춤을 추며 다가오는 것 같아 자기 집의 이름을 ‘무율제’라고 지었다. 노년에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한시(漢詩)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 역시 서울 집을 팔고 바닷가 마을의 싼 집을 사니까 차액이 제법 되더라고 했다. 그 돈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찾아먹을 수 있는 혜택인지도 모른다. 그가 따라주는 보이차를 마시면서 우리는 고수의 지혜를 들었다.

“이곳으로 내려와 먼저 이 고장에 대해 공부했어요. 예전에는 남편이나 아들이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낙네들이 바닷가 높은 언덕에 가서 불을 피웠더라구요. 깜깜한 바다에서 그 불빛을 보고 돌아오라는 거죠. 그 자리에 나중에 등대가 세워졌는데 그게 지금은 관광지가 된 묵호등대예요. 슬픈 배경이죠. 또 죽은 사람들을 망상해변에 많이 묻었다고 해요. 망상의 망은 한자로 죽었다는 의미의 망(亡)이었는데 요즈음에는 희망을 의미하는 망(望)으로 바꾸었더라구요.”

그는 이 지역의 문화해설사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이곳에 와서 칠십까지만 해도 활기차게 길을 잘 걸어 다녔어요. 그런데 칠십대 중반을 넘으니까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몸도 굼뗘지는 거예요. 팔십이 되니까 예전에는 단번에 걷던 길도 도중에 한번 쉬고 다시 가게 돼요. 제 앞에 계신 두 분도 지금과 몇년 후가 느낌이 확 다를 겁니다. 그렇게 변한다는 걸 미리 알아두셔야 합니다. 며칠 전 몸살이 와서 누워있었는데 이제는 남의 일 같던 죽음이 내 앞에 와 있는 걸 느꼈습니다. 언젠가는 오는 게 죽음이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내 차례가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심리적으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웰다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웰 다잉을 어떻게 하시려구요?”

내가 되물었다. 이제 우리들의 공통된 관심사가 아닐까.

“얼마 전 잘 아는 선배가 돌아가셨는데 심장질환을 가지고 계셨죠. 주변에서 수술을 하라고 하니까 이 좋은 병을 왜 수술을 하느냐고 되물었어요? 고통 없이 바로 죽을 수 있는 게 심장병이라는 거죠. 그분은 소원대로 심정지로 바로 돌아가셨어요. 그건 방법상의 문제고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재물에 대한 염려도 내려놓고 한이 있어서도 안 되겠죠. 혹시나 남과 매듭진 게 있었나를 살펴서 풀고 내가 빚을 지고 갚지 못한 게 있나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그 사십년 전 꾸었던 쌀이 떠오르셨는지 날보고 그걸 대신 갚으라고 유언을 하셨죠. 저는 마음의 정리를 한 후에 내가 살던 이 정든 집에서 조용히 죽고 싶어요. 중환자실의 바늘지옥에서 가고 싶지 않습니다.”

신선같이 살아온 80대의 인생 선배에게 살아있는 가르침을 받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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