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우즈벡에서 별이 된 ‘어린왕자’

“노년의 그가 다시 먼 나라고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그는 소년 시절 내게 강조하던 지구별에 떨어진 어린왕자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마지막 얼굴은 환한 행복의 미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타슈겐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떨어지는 낙엽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 것일까. 그가 머나먼 생소한 나라에서 끝을 맺었다. 그가 눈을 감을 때 혹시 그 여자가 옆에 있었을까. 그는 불운한 천재였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먹구름이 끼었던 인생이었다.

어느날 그는 다섯살 때쯤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피를 토해내듯 말했다. 그날 엄마 손을 잡고 사람들이 붐비는 재래시장을 갔었다고 했다. 어느 순간 엄마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하늘이 무너진 듯 발을 동동거리며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보면서 혀를 찼다. 몇 시간을 울면서 눈물 콧물이 얼굴에 범벅이 됐을 때 바로 그 앞 양복재단을 하는 가게 남자가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부터 그는 재단 가게 남자의 심부름을 하며 자라났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그는 이미 줄자를 들고 재단을 하는 기술자가 되어 있었다. 재단 가게 남자는 그의 영리함을 눈여겨 보면서 중학교에 보내주었다.

그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가게 일을 하면서 영어책을 통째로 외워 버렸다. 수학도 공식만 알면 실이 풀리듯 답이 나왔다. 국어책에 나오는 모든 글이 메마른 땅에 물이 스미듯 그의 영혼에 입력됐다. 그는 중학교 전체에서 1등을 했다. 담임선생은 그에게 전국의 수재들만 가는 명문고등학교 시험을 쳐보라고 하면서 입학원서를 써주었다.

치열한 입시경쟁이 있을 때였다. 부모들이 아이들 학원을 보내고 과외 시키고 교육열이 뜨거울 때였다. 그는 재단가게에서 일을 하면서도 명문고등학교에 쉽게 합격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교실 구석에서 침묵하면서 가만히 있는 그와 친구가 됐다.

성탄절 무렵 그는 내게 여러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마술사 같았다. 연필을 쥐고 흰 종이에 쓱쓱 선을 그리면 바로 눈덮인 하얀 초가집이 나타났다. 그는 어눌한 말투로 내게 생텍쥐페리를 얘기했고 그의 작품 속 주인공 어린 왕자의 존재를 내게 알려주었다.

우리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도 입시경쟁이 치열했다.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면서 3수, 4수, 5수가 흔했다. 그는 바로 카톨릭 계통의 명문대에 합격했다. 그는 내게 일하지 않고 넉달만 공부할 수 있었다면 서울대에 들어갔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그는 그가 일하던 가게의 주인집에서 나왔다. 그 집 엄마가 혹시나 그가 상속재산을 노릴까 봐 경계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혼자 벌어서 대학을 다녔다. 틈틈이 쓴 논문으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신문사에 들어가 문화부 기자가 됐다. 동료기자들은 그의 문학평론을 읽으면서 그에게 천재성이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언젠가 그는 최고의 소설을 쓸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운명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빛이 비치는 것 같지 않았다. 조직의 변방에 혼자 조용히 존재했다. 어느 날부터 그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했다. 유튜브를 통해 화음을 배웠는데 생각보다 피아노가 어렵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 얼마 후 그는 동창들 종교모임에 나와 피아노 반주를 하기도 했다.

정년퇴직 후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에 자원했다. 그는 타슈겐트에 방을 얻어 혼자 생활한다고 했다.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만들고 밥을 지어 먹는다고 했다. 외롭게 버려졌던 그는 가족에게는 따뜻한 둥지가 되어준 것 같았다. 아들이 의사가 됐다고 했다. 다가구 주택을 사서 부인에게 맡겼다.

그에게 시장통에 그를 두고 간 엄마를 찾아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찾지 않았다고 했다. 저승에 가서 봐도 외면할 거라고 했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상처는 화석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해외에서 5년간 봉사 기간이 끝나고 그가 귀국했을 때였다. 함께 만난 자리에서 그가 스마트폰에서 한 이국 여인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자기에게 사랑이 피어났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으로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얼굴에는 평생 따라붙던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고 맑은 하늘이 된 것 같아보였다.

노년의 그가 다시 먼 나라고 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그는 소년 시절 내게 강조하던 지구별에 떨어진 어린왕자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마지막 얼굴은 환한 행복의 미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가시오. 이 땅에 소풍 왔던 어린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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