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일까?”

“하나님의 영이 예수에게 들어갔다. 예수는 하나님의 영이 안에서 말을 하라고 시킨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 영이 되어 사람들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바울이란 인물이 길을 가던 중 예수의 영을 만났다. 그는 그후 죽을 때까지 그 영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했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영화 <사도 바울> 포스터

아파트에서 은거하며 혼자 사는 70대 중반의 노인을 안다. 그는 모든 걸 내면에 들어와 있는 영에게 묻고 나서 행동한다고 했다. 며칠 전 그의 여동생이 병원에 있는 사실을 내가 우연히 먼저 알고 그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는 속에 있는 영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냉정하거나 비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밝고 명랑하고 따뜻한 면을 가졌다. 그러나 친구를 만날 때도, 외출할 때도 자신의 속에 있는 영에게 물어본다고 했다. 그는 전 재산을 부인에게 주고 부인을 떠났다. 자식과도 멀리 떨어져 지방 도시에 방을 얻어서 혼자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살다가 조용히 죽겠다는 것이다.

그는 최고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위관료 출신이었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 그 분이 있다고 했다. 진짜라고 했다. 내면으로 귀를 돌려 그 존재의 미세한 소리를 들어보려고 노력하면 들린다고 했다.

대학 동창이 내게 우연히 경전 비슷하게 생긴 책 한 권을 내게 주었었다. 일반 성경책 같이 검은 가죽표지에 금박을 박았다. 소수의 신봉자가 그 안에 들어있는 말들을 성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 책을 1년 정도 구석에 쳐박아 두었다가 며칠 전 밤늦은 시각에 호기심으로 일부분을 들춰보았다.

전반부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여인의 일생이 담겨 있었다. 학교도 가지 못하고 식모살이를 하고 시장에서 장사도 하고 그런 바닥 생활 속에서 자랐다는 여인이었다.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던 그녀는 어느 날 밤 내면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녀는 얼마 후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됐다. 스님들이 모여 불교이론을 배우는 자리에서도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는 계속됐다. 그녀가 다른 승려들에게 그 말을 전하자 매가 돌아오고 절에서 쫓겨 났다. 그녀는 겉으로는 근엄한 승복을 입었어도, 그들은 보통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혼자 떨어져 나와 산속의 비구니 암자에서 살면서 일생 동안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를 사람들에게 전했다. 내가 받은 책은 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 내면의 소리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몇 년 전 민족종교의 지도자인 70대 중반의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종교의 신도들은 그녀를 신적인 존재로까지 떠받들고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는 카톨릭을 믿는 평범한 소녀였다고 했다. 다만 성당에 가서 촛불이 켜져 있는 감실을 보면 두려움이 엄습했다고 했다. 그녀는 성장해서 건설회사 직원의 아내가 됐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알지 못할 이상한 존재의 소리가 그녀에게 들려왔다고 했다. 그 존재는 수시로 그녀에게 나타나고 한번은 그녀를 태백산까지 데리고 갔다고 했다. 그녀를 이끈 존재는 백년 전 죽은 민족종교의 교조라고 했다. 그녀는 그 존재의 메신저가 되어 받은 메시지를 신도들에게 전하게 됐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민족종교 지도자가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귀신들도 본다고 했다. 귀신들은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보통사람들 하고 똑같이 청바지를 입고 행동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사건을 의뢰하기 위해 내 사무실을 찾아왔던 유명한 무당이 있다. 그 무당에게 신의 세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무당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신의 세계는 다양해요. 사시래기 잡귀신들도 있고 내가 잡혀있는 장군신도 있고, 그 계급도 여러가지예요. 내가 모시는 장군신은 우선 신점을 쳐서라도 웬만큼 먹고 살게는 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끝까지 보호해 주지는 않아요. 어느 순간 팽개쳐질 내 운명을 안답니다. 그런데 신 중에 가장 강한 신은 기독교의 성령이예요. 나는 그건 알아요.”

무당이 성령을 말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적 존재들이 공존하는 건 아닐까. 성경을 보면 수많은 영적 존재들이 있다. 천사도 사탄도 영적인 존재다. 수많은 종류의 귀신들이 등장하고 있다. 하나님도 영이라고 한다.

인간은 그런 영적 존재들이 묵는 장소이기도 하고, 지나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에게 들어갔다. 예수는 하나님의 영이 안에서 말을 하라고 시킨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 영이 되어 사람들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바울이란 인물이 길을 가던 중 예수의 영을 만났다. 그는 그후 죽을 때까지 그 영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했다.

지금의 나는 진짜 나일까? 속에 있는 어떤 존재의 아바타 내지 그림자는 아닐까. 나와 ‘내 안의 나’는 다른 존재일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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