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대도 조세형’과 인권변호사의 만남
나는 그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다. 공판이 시작됐다. 법대 위에 높이 앉아있는 재판장의 주위에 서늘한 공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가 끌려 나와 법정 가운데 놓인 나무의자에 앉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15년간 상자 같은 어두운 방에 갇혀 있다가 세상을 다시 보는 순간이었다.
“이봐요, 일어나요.”
재판장이 그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뭔가 못마땅한 어조였다.
“연령은?” 재판장이 물었다.
“모릅니다. 6.25 때 고아원에 버려졌습니다.”
“직업은?”
“없습니다.”
“없는 게 아니라 도둑질 이외에 한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거겠지.” 재판장의 말에 빈정거림이 들어있는 것 같이 들렸다. 그렇게 인정신문이 끝나고 검사가 신문을 시작했다.
“피고인 어려서부터 도둑질하고 감옥에 가고 하면서 사회에 있을 틈이 거의 없었네?” 검사는 대충 빨리 끝내버리자는 눈치였다. 사회의 쓰레기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싫다는 것 같았다.
“변호인 신문하시죠.” 재판장이 나를 보고 사무적으로 말했다. 법정은 얼어붙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재심을 제기한 나는 그냥 허무하게 뭉개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를 통해 세상과 싸워야 하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인권유린과 사회보호법의 허구성이었다. 그 추상적인 관념을 그에 대한 재판이라는 행위를 통해 구체화하기로 작정했다.
결정적으로 불리한 점이 있었다. 드라마같이 그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미남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전과가 많은 도둑이었다. 동정할 여지가 없는 악성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나는 머나먼 길의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피고인 15년 전에 받았던 재판의 최후에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합니까?”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무엇이었나요?”
“혁수정을 차고 개같이 밥을 핥아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25년 동안 징역으로 죄값은 치르겠으니까 식사때 만은 뒤로 묶은 가죽수갑을 풀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15년 징역 사는 동안 그걸 풀어줬나요?”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짐승보다도 못하죠.”
“왜 그런 특별한 대우를 받았죠?”
“비밀을 폭로하려고 했다는 이유 같았습니다.”
“그 비밀이 뭔가요?”
나는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그 시절 권력과 재벌이 유착되어 많은 부정부패가 있었다. 그는 권력가의 집 내부로 들어가 감추어진 수많은 것을 보았다. 당시 언론은 그를 ‘대도’라고 띄우면서 권력가의 속 뜰을 간접적으로 폭로했었다. 그에게 괘씸죄가 걸려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검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변호인은 법정에서 필요한 얘기만을 물었으면 합니다. 재판장께서는 범위를 넘어가는 말은 제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검사의 말에 재판장이 나를 보면서 다그쳤다.
“변호인은 불필요한 사항을 묻지 마세요.” 예상했던 제지였다.
“그러면 구체적인 비밀의 내용은 생략하고 방향을 돌리겠습니다.”
나는 재판장에게 그렇게 말하고 다시 그를 보면서 물었다.
“피고인은 조금 전에 징역 25년을 살 것이라고 하고 그동안 15년을 살았다고 하는데 그러면 앞으로 10년이 남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 10년도 절도죄에 대한 형벌인가요?”
“제 절도죄에 선고된 징역은 15년인데 나 같은 놈은 나오면 안 된다고 덤으로 10년을 더 받았습니다.”
사회보호법의 핵심을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법조출입기자가 우연히 그 공판을 본 것 같았다.
그날 저녁 텔리비전 뉴스에서 교도소의 인권유린 실태가 특집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언론은 담당 재판장의 과도한 진술권 제한도 꼬집었다. 내가 법정에서 제지당한 ‘비밀’이라는 단어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에게 인권변호사란 이름을 붙여주게 된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