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7년 감방생활 후 그는 이렇게 변해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그가 바닷가에 사는 나를 찾아왔다. 7년의 감옥살이를 하고 70 고개를 넘은 그 역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주위에서는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가라앉은 듯한 적막감 같은 게 떠돈다고 할까. 나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활기차게 사업을 하던 그는 30대 말에 부도를 맞이했다. 그는 해외로 도피해 20여년을 떠돌다가 잡혀왔다. 그리고 7년 넘는 세월을 감옥 안에서 보내고 나온 것이다. 그는 30년의 인생을 낭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지방 도시에서 극장과 과수원 등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집 아들이었다. 그가 상속받은 부동산을 그대로 가지고 백수로 살았더라도 엄청난 부자였을 것이다. 머리 좋고 공부 잘했던 그는 집안의 희망으로 떠받쳐진 것 같았다. 그와는 법대 동기였다. 대학 4학년 무렵의 여름을 그의 집안에서 지어준 절에서 그와 함께 고시공부를 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고시공부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했다. 그는 전자부품을 만들어 내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사업은 수출 바람을 타고 높이 떠올랐다. 그는 수많은 직원을 거느린 큰 회사의 사장이 됐다.
그 무렵 그는 정치쪽을 향한 꿈을 내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고향에 대형공장을 세워 사람들을 고용하고 시민 한 사람 당 십만원 정도 계산해 선거자금으로 풀면 국회의원에 당선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돈이 있어도 낭비하거나 일탈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독한 애국자였다. 그가 외국에 갔다가 입국할 때 그의 가방에는 컵 라면 하나가 달랑 들어있어 세관직원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우리가 30대 말쯤의 어느 추석 무렵이었다. 그가 부도가 나서 외국으로 도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리한 시설확장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의 기나긴 방랑생활이 계속됐다. 그가 막노동같은 궂은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담보로 잡혔던 그의 많은 상속재산이 경매를 통해 남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가 도피생활을 할 때 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저세상으로 건너 갔다. 맏아들인 그는 부모의 장례식에도 올 수 없었다.
환갑이 넘은 그가 어느 날 잡혀서 국내로 들어왔다. 밤늦게 그가 있는 경찰서로 갔다. 형광등 밑에 앉아있는 그는 백지장 같이 창백하고 볼에 수염이 무성한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가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살다가 나온 것이다. 나는 30년 세월이 안개같이 사라져 버린 그의 불행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의 행위에서 어떤 원인을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는 자기의 운명을 설명할 수 없었고 나는 그의 불행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가 구속 됐을 때 나는 그에게 시편 23장을 천번 써보라고 권했다. 거기에 몰입하는 동안 상념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그가 쓰는 행위 속에서 그분이 그에게 나타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에게 징역형이 선고됐다. 항소심에서 형이 더 올라갔다. 법은 그를 도주한 악덕기업인으로 아주 나쁘게 본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고 그가 칠십이 넘은 노인이 되어 나에게 다시 나타난 것이다. 파도치는 바닷가의 설렁탕집에 들어가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그에게 말했다.
“슬기로운 감방 생활을 했을 것으로 믿어, 말해 봐.”
“감방 안에서도 일을 했어.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해 전자제품을 조립하게 했듯이 그런 비슷한 작업을 했지. 종이로 백화점의 작은 쇼핑백을 접었어. 하나를 접는데 11원을 받았어. 10개를 접으면 백원짜리 동전하나, 십원짜리 동전 하나지. 백개를 접으면 천백원이 되는데 그걸로 우리들이 중학교 때 즐겨 먹던 삼립 크림빵 한 개를 사 먹을 수 있었어. 매일 백개씩 접었어.”
“일하는 시간 외에는 뭘 했어?”
“고시공부하듯 매일 성경을 읽고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을 공책에 적고 그걸 외우고 했어. 이제 예수를 믿어.”
몇 시간이 계속된 그와의 대화에서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세월을 잃어버리고, 고난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그의 입에서 어떤 부정적인 말이나 원망과 비난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가 흘러나왔다. 그의 영혼이 변해 있었다.
그를 보면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무엇을 얻으려고 생이라는 이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