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⑭] 1984년 10월 청송교도소에서 무슨 일이…
1995년 여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40~50대쯤의 남자 세 명이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빗방울이 묻어 눅눅하고 구겨진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중 한 남자가 말했다.
“저희는 교도소 안에서 맞아 죽은 박영두의 형제입니다.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 소파를 권해서 앉게 했다. 맏형이라는 사람이 대표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통영의 부둣가에서 분식점을 하고 있습니다. 동생들도 전부 고생하면서 삽니다. 저희 형제들은 동생이 교도관들에게 맞아죽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부가 감추는 일을 힘없는 백성들이 어떻게 들춰내겠습니까? 오히려 정부가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꾹 참고 한이 서린 채 가슴만 치고 있습니다.”
형제들의 얼굴에 순간 분노와 함께 눈에 물기가 맺혔다. 맏형의 말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날을 잊지도 않고 있습니다. 1984년 10월 14일 저녁 8시경 제가 국수 국물을 끓이고 있는데 전보가 왔어요. 동생이 사망했다고 하면서 가족이 청송교도소로 오라는 내용이었죠. 형제들이 바로 다음날 청송교도소 보안과장실로 갔습니다. 그 옆에 교도소 안의 의사라는 사람이 같이 있었죠. 보안과장이 저희 동생이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시신을 오래 보관할 수 없어 그냥 매장했다고 했습니다. 옆에 있는 젊은 의사가 아침 기상 시간에 갑자기 쓰러져 의무과로 옮기는 도중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뭔가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 찜찜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전보를 받자마자 하루 만에 왔는데 왜 그렇게 급하게 매장을 했느냐고 따졌더니 시신을 보관할 장소가 없고 날씨가 더워서 그랬다면서 이해하라고 강요하듯 말했습니다. 읍내 병원에라도 안치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 보안과장은 제 동생을 교도소 뒤쪽에 묻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그 장소를 안내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화가 났습니다. 보안과장을 포함해서 같이 있던 교도관들이 슬며시 자리를 피하는 거예요. 제가 보안계장이라는 사람의 옷을 잡고 동생이 어디 있는지 가자고 하자 자기가 묘지까지 안내할 의무가 있느냐면서 도망 가는 겁니다. 우리 형제들은 공무원들의 그 비겁한 모습과 동생의 죽음을 보고 가슴에 피멍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신문에서 대도 재판과정에서 변호사님이 제 동생의 죽음을 얘기했다는 걸 보고 왔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우리들은 힘이 없습니다. 권력을 가진 정부가 두렵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대도가 나한테 한 말이 맞았다. 형제들의 증언은 충분한 간접증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며칠 후 기사를 보고 왔다는 40대 초쯤의 남자가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저는 전과 6범입니다. 어려서부터 잘못된 길을 갔죠. 고등학교 시절 불량써클에 들어 매일 싸우고 도둑질도 했습니다. 뻔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전과자가 됐죠. 그래도 저는 감옥 안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변했습니다. 제가 징역살 때 감옥 안에 긴급조치 위반자들이 많았어요. 장영달, 설훈 같은 운동권 투사들을 만나 제가 달라졌어요. 깡패나 도둑놈으로 살아야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옥 안에 있을 때는 그분들과 함께 교도소 내의 인권유린에 항의하면서 단식농성도 하고 그랬어요. 저는 지금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뒤늦게 갈 길을 찾은 거죠. 교도소에 있을 때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석방 후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어떻게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죽은 박영두가 청송교도소의 특별사동에 있을 때 저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박영두가 22방이고 제가 옆방인 23방에 있었죠. 그날 저녁 백대가리라는 별명의 교도관이 부하 몇 명하고 나타나 박영두를 끌고 지하실로 갔어요. 나는 그날 밤 지하실에서 흘러나오는 박영두가 맞아 죽는 소리를 들었어요. 새벽에 죽은 박영두를 순화교육실에 잠시 뒀다가 파묻어 버렸어요. 나는 그걸 알아요.”
나는 그로부터 자세한 내막을 들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뜬금없는 그들의 사무실 방문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가를 되돌아본다. 그걸 파헤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은 엄청난 핍박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은폐하려는 국가권력과 싸우면서 피를 흘려야 하는 일이었다.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알 수 없는 힘이 도망가려는 나를 붙잡고 불 속으로 밀어 부치는 것 같았다. 하나님이 내게 준 반갑지 않은 소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