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⑬] 30년전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

나는 체험을 나누는 단순한 고백자이다. 논쟁하고 싶지 않고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싫다. 그냥 내가 겪었던 일들과 생각을 공감해줄 소수의 동지들을 위해 쓰는 것이다. 읽는 사람들의 눈높이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나의 경험과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지금 써놓지 않으면 더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조세형씨 1998년 모습. (사진 <한겨레>)

나는 요즈음 30년 전 변호사로서 경험한 일을 쓰고 있다. 세월의 먼 저쪽으로 갔는데도 아직 기억이 선명하다.

내게 ‘대도’ 사건은 상습 절도범을 봐달라는 단순한 게 아니었다. 사건마다 그 본질과 던져주는 의미가 숨어있다. 인간이 무엇인지. 죄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가 사실로서 그 속에 들어있다고 할까. 높은 담장 뒤의 그늘에 숨겨져 있던 그 사건을 나만 봤다. 개인의 체험 영역이었다. 나만 느끼고 생각했던 점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변호사업을 중단했다. 이제는 세월과 침묵의 체로 거른 그때의 일들을 드문드문 글로 남기려 하고 있다. 나의 체험을 통해 깨달았던 그 시대와 인간의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나는 체험을 나누는 단순한 고백자이다. 논쟁하고 싶지 않고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싫다. 그냥 내가 겪었던 일들과 생각을 공감해줄 소수의 동지들을 위해 쓰는 것이다. 읽는 사람들의 눈높이나 깊이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나의 경험과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지금 써놓지 않으면 더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다.

얼마 전에는 대도의 보호감호 재심사건의 항소심에서 나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검사의 공격에 대해 반론을 썼다. 그들은 왜 그렇게 민감했을까.

극히 일부의 질 나쁜 교도관들의 짓이지만 그들이 사람을 때려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가 출렁거릴 수 있었다. 권력은 어쨌든 그런 걸 감추어야 했다. 범죄인이기 때문에 그런 놈들은 때려죽여도 된다는 일부 국민들의 생각이 그 사건의 색깔을 희석시키기도 했다. 사회보호법도 그랬다. 사회를 범죄자로부터 보호하자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었다.

나는 혼자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거대한 성벽을 향해 모래 한 알을 던지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할까.

대학생인 박종철이 수사관들에게 살해됐을 때 국민적 저항이 일었다. 그러면 범죄인은 때려죽여도 되는 것일까. 감옥 안에는 쟝발장 같은 좋은 사람도 있었다. 하나님은 참회하고 다시 태어나는 죄인을 더 좋아하신다.

죄인과 함께 낮은 자리에 가서 있어 보니까 이 세상은 바리새인들이 들끓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선인과 악인을 심판하고 정죄하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를 묻고 싶었다.

사회보호법에도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너는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놈이야”라고 그의 미래를 판단하는 주체는 사람이었다. 인간의 미래를 판단하고 미리 징역형을 주는 사람에게 오류가 없을까? 그는 그런 신적 존재일까.

인간이란 변하기 마련이다. 참회하고 다시는 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다. 부활한 인간의 마음을 판사가 읽을 수 있을까. 인간의 미래를 미리 짐작하고 정죄하는 당신들은 누구냐고 나는 묻고 싶었다. 그런 것들이 내가 대도를 변호하는 이유였다. 나는 그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지만, 안 그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법은 그가 참회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라고 했다. 현실의 세상에서는 증거나 증인이 필요했다. 면회 오는 사람 한명 없이 15년간 감옥에 있던 사람에게 그 마음이 변했다는 걸 증명할 어떤 증거나 증인이 있을까. 그를 위해 밤중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준 교도관, 그리고 감옥을 돌아다니며 예수의 도를 전하는 천사표 장로, 그를 동정해 주던 형사, 어려서 그와 거지 생활을 함께 한 친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와 접촉하고 마음속을 일부 엿본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이 통보되자 청송지역에서 재소자들에게 천사로 알려진 장로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도소장이 제가 증언을 하면 앞으로 교도소 출입을 금지시키겠다고 강경하게 말하더라구요. 증언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를 위해 무릎꿇고 기도해준 교도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정 조직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은 다 나쁜 놈 만들고 저 혼자만 좋은 사람이 되면 제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왜 세상에 쓸데없는 얘기들을 해서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까? 대도가 조용히 석방될 것 같으면 증언해 줄 수도 있죠. 그렇지만 안되겠습니다.”

그를 도와주었다는 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왜 나를 증인으로 신청합니까? 전 하여튼 안나갑니다.”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나는 안 나오는 증인은 강제구인이라도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증인의 법정출석은 개인적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그들은 법정에서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었다. 그들의 사전 양해를 얻지 않은 것은 그들이 모든 핑계를 나에게 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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