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⑨] 국무총리와 도둑,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1971년 말경 어느 날 오전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선 대도는 신당동 로터리에 있는 파출소를 끼고 넓은 뒷길을 따라 올라갔다. 10여분쯤 걸으니까 커다란 상자를 포갠 듯 큰 집 한 채가 보였다. 담에 경비초소가 있고 쇠창살을 한 대문 틈으로 건장한 남자 한 명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본문 가운데) 

내가 대도에 대한 재심법정에서 교도소 내의 인권유린을 얘기하고 일부 언론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무렵 메이저 일간지의 독자란에 한 시민의 이름으로 글이 올랐다.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 산다는 김운용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내용은 대강 이랬다.

‘대도가 수감 중 두 번이나 탈옥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대도는 얼마 전 재판정에서 자신은 지난 15년간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그가 탈옥을 시도하고 교도관을 인질로 잡고 대치까지 했으니 수감생활이 결코 모범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검거 당시 사법당국이 고의로 범죄를 축소했다느니 하면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려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덩달아 사회 일각에서는 대도를 의적인 양 추켜세우고 석방을 주장하고 있다. 보호감호제도는 합헌이다. 여론에 호소해서 그의 석방을 주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단순한 시민의 글이 아닌 것 같았다. 일반시민이라면 알 수 없는 교도소 내의 일들이었다. 그 글은 법정 상황까지 꿰뚫고 있었다. 나는 내게 찬물을 끼얹으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유치한 공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를 하다 보니까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리한 위치에서 시합을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수사권을 가진 검사는 사실을 확인할 힘이 있었다. 수시로 출입기자들에게 정보를 흘려 언론에 보도되게 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으로 피의사실을 발표하고 여론을 몰아갔다. 법정도 공평하지 않았다. 검사는 수시로 증인들을 검사실로 불러 겁도 주고 달래기도 하면서 검찰이 요구하는 진술을 하도록 연출했다. 관련자들의 증언을 산더미 같은 조서로 사전에 만들어 옴짝달싹 할 수 없게 했다. 반면 변호사에게는 법정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극히 제한된 시간이 있을 뿐이다. 판사의 의식도 변호사편이 아니었다. 피고인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변호사가 죄인의 말을 듣고 변론하는 것은 대부분 거짓말로 치부됐다. 내가 제기하는 인권문제에 대해 세상은 비웃는 것 같았다. 잡놈인 도둑이 하는 거짓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SBS 8시 뉴스의 앵커는 아예 “세월이 이상하니까 도둑놈도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라고 깔아뭉갰다. 앵무새 같이 시키는 말을 그대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앵커가 원망스러웠다.

그 무렵 조선일보 기자에게 대도가 국무총리 집 창고에서 케네디 대통령에게 받은 은빗을 턴 것을 간단히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게 가십성 기사로 나왔다. 총리실에서는 바로 사실무근이라고 성명을 내고 대도가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좀도둑 주제에 총리가 케네디의 선물을 받은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어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대도의 기억력은 상당히 치밀했다. 느릿한 어조로 말하면서도 그 표현은 상세했다. 내가 그에게서 들은 걸 묘사해 둔 기록은 이랬다.

1971년 말경 어느 날 오전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선 대도는 신당동 로터리에 있는 파출소를 끼고 넓은 뒷길을 따라 올라갔다. 10여분쯤 걸으니까 커다란 상자를 포갠 듯 큰 집 한 채가 보였다. 담에 경비초소가 있고 쇠창살을 한 대문 틈으로 건장한 남자 한 명이 서성이는 게 보였다. 순간 그는 비어있는 경비초소 지붕으로 가볍게 올라 집 뒤편의 담을 고양이처럼 타고 가다가 난간을 잡고 2층 베란다에 사뿐히 뛰어내렸다. 철창이 있었다. 그는 가지고 있던 드라이버로 철창 나사를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화구와 물감들이 보였다. 벽에 작은 그림들이 걸려 있고 푸르스름한 오래된 꽃병 같은 것도 보였다. 포장을 뜯지 않은 상자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 유리상자 하나가 보였다. 그 안에 놋쇠로 만든 건물모형이 있었다. 가까이 들여다 보았다. 경향신문의 사옥이었다. 그 앞에 이런 작은 글씨가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국무총리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그는 깜짝 놀랐다. 국무총리는 5.16혁명을 주도하고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최고의 권력자였다.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그는 방을 나오다가 은으로 된 빗과 담배 케이스를 기념으로 가져나왔다.

다음날 그와 통하는 마포경찰서의 윤 형사한테서 연락이 왔다. 정기적으로 그가 상납을 하는 친한 형사였다.

“국무총리 댁에 도둑이 들어 지금 시경이 온통 난리가 났어. 총리가 미국 갔을 때 케네디 대통령한테서 은빗을 선물 받았는데 하필이면 그게 없어졌다는 거야.”

한 시간 후 대도는 소공동 아케이드 양품점 코너에 나타났다. 평소 고급 셔츠를 맞춰입는 단골집이었다. 40대 주인 여자가 마음이 넉넉했다.

“아줌마 내가 선물 하나 줄게”

그가 은빗을 내놓았다.

“어머 예쁜 은빗이네. 고마워”

주인 여자가 이리저리 만져보며 좋아했다.

“다시 남한테 줄 생각 절대 말고 그냥 잘 가지고 쓰슈”

그는 나중에 그 집 보물창고에서 본 작은 그림이 르노와르라는 서양화가가 그린 것이고 낡은 꽃병같이 생긴 게 고려청자였다는 걸 전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은빗 얘기가 그가 지어낸 거짓말인지 형사의 거짓인지 아니면 은빗의 존재를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한 총리실의 거짓인지.

그래도 세상은 다양했다. 더러는 들어주는 언론도 있는 것이다. 어느 날 ‘피디수첩’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의 윤길용 피디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저희 방송국에 대도에 관한 자료가 600시간 분량이나 보관되어 있어요. 엄 변호사님이 제기한 의문들이 그 자료들하고 잘 맞아 떨어지더라구요. 저희가 대도 사건의 이면을 한번 다뤄 보려고 하는데 좀 도와주시죠.”

윤길용 피디는 주머니에서 이름들이 가득 적혀 있는 종이쪽지를 내놓았다. 그가 연필로 줄을 친 부분에 내 이름이 타자 되어 있었다. 나는 대도에게 들은 말을 전해주면서 방송국 자료들과 비교해 보고 진실을 한번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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