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⑥] 숯불지기 청년의 외침과 시인 한하운

조세형이 그 15년전 잡혔을 때 법원에 직접 제출한 탄원서가 내게 있었다. 그의 탄원서는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시 ‘나는 문둥이로소이다’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글을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대도라고 불린 절도범 사건의 재심을 신청했을 무렵이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법조인들이 모여 청계산을 등반한 후 산밑의 고깃집에서 회식이 있었다. 그 자리는 현직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의 친목 모임이기도 했다. 그 무렵 신문에 이런 기사가 왔다.

“대도라 불리우는 그는 고모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이미 동네 아이들의 장난감이나 먹을 걸 빼앗곤해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는 열 살 무렵 한쪽 손에 자전거 체인을 감고 다니며 싸움을 일삼았다. 그 후 도둑의 길로 들어선 그는 무명의 절도범으로 있다가 1975년경 기업형 절도의 창시자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는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면서 그 악성을 더욱 심화시켜왔던 인물이다. 그의 수감기간은 새로운 범죄를 위한 준비기간이며 인간성을 상실한 전형적인 범죄인의 전형이다.”

그의 악성을 나타내는 이런 류의 기사들이 엄청나게 보도됐다.

기사 내용을 그대로 믿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조세형이 그 15년전 잡혔을 때 법원에 직접 제출한 탄원서가 내게 있었다. 그의 탄원서는 문둥이 시인 한하운의 시 ‘나는 문둥이로소이다’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글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하운 시인

‘저는 유년기에 전국의 보육원 스물일곱 곳을 전전했습니다. 소년기에는 서울 소년원을 20회 왕래했습니다. 성년이 되어서는 실형 전과 9범으로 교도소에서만 보낸 세월이 16년이 넘었습니다. 제 자신이 생각해도 징역살이에서는 대단한 관록이 붙은 셈입니다. 감옥에서 보낸 세월을 빼면 어릴 때 깡통을 들고 밥을 얻어먹던 시절의 생활이 제일 길었습니다. 저는 깡통을 들고 얻어먹으며 길에서 자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골목길에서 가마니를 이불삼아 생활하던 것이 제겐 유일한 자유의 추억이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환경이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들은 깡통이 없이도 배를 채울 수 있는 슬기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 슬기 때문에 저는 소년원을 자주 왕래하게 됐고 그곳에서 만난 선배들이 전문적인 기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자 정부는 저 같은 부랑아들을 목포 앞바다의 외딴 섬으로 보냈습니다. 저는 그곳을 탈출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열다섯살 쯤 되던 때 저는 20-30명의 아이들을 규합해 부랑아생활을 했습니다. 스무살 무렵부터는 유명 인사와 부호의 집을 털기 시작했습니다. 1975년 검거됐을 때 서울지검의 박희태 검사님은 저를 생계형 절도가 아닌 축재와 향락을 위해 도둑질을 기업화한 범죄인이라고 했습니다. 박 검사님은 악성 절도범으로 최고의 응징으로 최장기간 사회와 격리시켜야 한다면서 절도범에게 최고인 징역 25년을 구형했습니다. 그 후 8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온 후 몇 달 만에 총을 맞고 검거됐습니다.’

그의 탄원서에는 사정하는 내용이 별로 없었다. 담담히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고 있었다.

신문기사를 읽었는지 모임에 참석했던 고위검사 출신 한 선배가 소주잔을 입에 털어놓은 후 이런 말을 했다. “대도 그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타고난 악인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현직 부장검사가 이런 말을 했다. “맞아. 그런 놈들은 말이지 죽을 때까지 범죄를 저지를 게 틀림없다구. 내가 사형집행을 하러 간 적이 있는데 나쁜 놈들은 목에 밧줄이 걸릴 때까지 거짓말을 하는 걸 보니까 어처구니가 없더라구.”

민주국가라고 하고, 인간은 평등하다고 헌법에 적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하나님을 대신해서 심판하는 계급이 있는 것 같았다. 회식 자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음식점에서 우리 자리로 숯불을 나르던 청년이 내게 다가왔다. 그 청년이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변호사님이 한 불쌍한 도둑을 맡아서 수고하시는 걸 신문에서 봤습니다. 저같이 이 세상의 밑바닥에서 사는 천한 놈들은 저기 잘났다는 판사님이나 검사님들보다 변호사님 같은 분을 훨씬 존경합니다.”

갑자기 자리가 썰렁해졌다.

“저런 고얀 놈이 있나?” 자리에서 그런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속에서 주먹 같은 것이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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