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③] 국가는 죄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있다?

국가권력을 상대로 하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나는 투구와 창은 없지만 다윗처럼 강가의 조약돌 몇 개를 집어 물매로 던질 각오였다. 그게 정통으로 이마에 꽂힐지 아닌지는 하나님이 해줄 영역이었다. 사진은 다윗과 골리앗

나는 광화문의 조선일보 건물 5층으로 올라갔다. 시사잡지 <월간조선> 사무실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구석의 책상 앞에서 백발의 편집장 조갑제씨가 돋보기를 쓰고 원고를 보고 있었다. 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였다.

“물방울 다이어먼드를 훔친 대도라고 알고 계세요?” 내가 그의 책상 앞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기억하죠. 워낙 사건이 많은 요즈음에야 별 사건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언론에서 굉장히 떠들어댔죠. 국회에서까지 얘기가 됐으니까 도둑치고는 꽤 대접을 받은 셈이죠. 그나저나 당시 얼마나 징역을 받았죠?”

“징역 15년에 보호감호 10년이니까 25년인 셈이죠”

“그때 단순한 도둑이던데 그렇게 많이 받았나? 살인범도 징역 몇 년 정도 선고될 땐데.”

나는 그에게 그동안 겪은 대충의 이야기를 하면서 도움을 청했다. 그가 입을 꽉 다문채 바닥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대도란 인물을 통해 범죄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써보시면 어떨까요? 내가 예전에 금당사장 살해사건의 박철웅이란 범인을 취재했던 적이 있어요. 그 사람 영웅심리가 대단합디다. 잘못을 반성하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잘난 척을 많이 하던 사람이예요.”

나는 잠시 후 조선일보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동아일보 출판국을 찾아갔다. 주간동아의 편집장인 고교 선배를 만났다. 강직한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그는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형님 고정 지면을 하나 주셔야겠어요. 내가 직접 쓰게”
“뭘 쓸라고?”
“서러운 일이 있어서 세상에 대고 직접 호소하려고요”
“알았어, 마음대로 써.”

그는 그런 성격이었다.

이어서 나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상임이사를 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는 고등학교 1년 후배였다. 그는 인권변호사들의 큰 형님 노릇을 하는 고교선배 조영래 변호사와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함께 처리했었다.

“대도에 관해 인권 측면에서 칼럼 하나만 써줘.”

내가 박원순 변호사에게 부탁했다. 이어서 나는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 등 직간접적으로 언론인들을 만나 부탁하고 다녔다. 법무부에서 먼저 보도자료를 내고 내 입을 틀어막는 언론플레이를 했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국가권력을 상대로 하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나는 투구와 창은 없지만 다윗처럼 강가의 조약돌 몇 개를 집어 물매로 던질 각오였다. 그게 정통으로 이마에 꽂힐지 아닌지는 하나님이 해줄 영역이었다.

며칠 후 한겨레신문에 박원순 변호사의 칼이 나왔다. 대강의 내용은 이랬다.

‘권세가의 곳간을 엿본 죄값 징역 15년. 그러나 그에겐 앞으로 10년의 덤으로 사는 보호감호란 징역이 더 있다. 군사독재의 마지막 상징인 보호감호. 하버트 윌슨이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도둑이 있다. 그는 용의주도하게 금고공장의 도제가 되어 용접기술을 배웠고 정부와 제조회사의 팜플렛을 숙독했으며 최고의 금고털이들을 모아 팀을 만들었다. 도주용 비행기까지 동원해 적어도 하룻밤에 10만 달러는 훔쳤다. 도둑으로 전업한 전직목사인 그는 가난한 교회에 그의 수입의 일부를 부쳐주곤 했다. 체포된 후 그는 감옥에서 자신의 무용담으로 도둑들의 교본을 만들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대도라고 별명이 붙은 도둑이 있다. 그는 미국의 도둑인 윌슨과는 다르다. 그 같은 기술도 조직력도 없다. 그는 권세가의 집을 넘봤다는 죄로 무기의 구형을 받았다. 그때부터 15년 뒤 그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미 나이 쉰다섯이 되어버린 이 도둑을 10년간 더 감옥에서 썩게 둘 것인지의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는 단순한 도둑일 뿐이다. 미화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그가 받은 15년간의 독거수용의 조치는 분명히 불법이며 비인간적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가 죄 지은 값 이상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보호감호는 군사독재의 마지막 상징물이다. 인간의 개조가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독재자들의 오판이 낳은 낡은 유물인 것이다.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죄인들이 필요 이상의 고통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새로운 시대의 행형 개혁 그것이 바로 대도의 석방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어서 주간지와 월간지들이 행형제도의 개혁에 관해 기사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정부 측에서 잠재운 언론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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