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대도 조세형’ 재판정의 판·검사 지금은 부끄러울까?

그때 검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제지시켜 주십시오.” 이번에는 검사가 직접 나를 보고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변호사가 관계없는 걸 말하지 말라 이겁니다.”(중략) “잠깐만요” 재판장이 나의 신문을 제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 심리를 연기하겠습니다.” 재판장도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 같았다.(하략) 사진은 대도 조세형씨

변호사인 나의 뇌리에는 잊혀지지 않는 재판 장면들이 포개져있다. 대도라고 불리던 상습 절도범에 대한 재심의 두번째 공판이었다. 첫 공판에서 그의 입을 통해 그가 겪은 가혹행위를 말하게 했다. 죄를 지었으면 징역을 살면 됐지 거기다 덤으로 개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그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나는 그의 입을 열었고 국가는 그의 입을 틀어막아야 하는 법정이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검사가 그를 찍어누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봐, 교도소 내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탈주를 시도했었지?”
“저 그게 아니고 기자를 불러달라고—”
“이유는 필요하지 않아. 하여튼 사동을 탈출해서 교도관을 잡고 인질 난동을 벌인 사실이 있나 없나 그것만 말해”
“그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됐어. 그만 말해. 왜 그랬는지 동기는 필요하지 않아”

검사가 그의 말을 끊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정상적인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도둑질 말고 기술이 있나?”
“없습니다”
“공부는 했나?”
“못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하다못해 목수나 미장일이라도 배우지 않은 이유가 뭔가?”
“독방에 갇혀 특별취급을 당했기 때문에—”
“그거야 교도관들에게 쓸데없는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
“됐어”

검사는 그의 말을 끊고 신문을 마쳤다.

“변호인 신문 하세요”
재판장이 심드렁하게 나를 향해 말했다. 인권이나 가혹행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감정 없는 바위 앞에서 재판을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교도관을 잡고 인질극을 벌였다고 했는데 왜 그랬죠?”
“사실은 교도관들이 사람을 몰래 때려죽이고 묻어서—”

그때 검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판장님 이의 있습니다. 지금 변호인은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제지시켜 주십시오.”

이번에는 검사가 직접 나를 보고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변호사가 관계없는 걸 말하지 말라 이겁니다.”
“지금 내가 신문하는 차례 아닙니까? 왜 검사가 변호사의 입까지 막는 겁니까? 검찰에서 먼저 그 부분을 물으니까 왜 그랬는지를 묻는 거 아닙니까? 왜 재판장 대신 나서서 법적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그런 행동을 하죠?”

방청석에 있던 기자들이 술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들이 메모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만요”
재판장이 나의 신문을 제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 심리를 연기하겠습니다.”

재판장도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 같았다.
법정을 나오는데 기자들이 따라붙으면서 “오늘 재판 어떻게 된 겁니까? 한 말씀 하셔야죠.”

어차피 우산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는 상황이 됐는데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 자리가 즉석 기자회견장이 됐다. 나는 모여든 기자들 앞에서 교도소 내에서 한 사람이 맞아 죽고 매장된 사실을 폭로했다. 기자들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억울한 죽음이라는 걸 입증하실 수 있습니까?”
기자 사이에서 질문이 나왔다.

“당시 같은 교도소에 있다가 석방된 사람들이 얼마든지 취재에 응할 수가 있답니다. 죽은 사람의 가족도 있습니다. 높은 담 뒤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여러분이 보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그 절도범은 나쁜 놈 아닙니까?”
“나쁜 놈이라고 해서 법을 무시하고 그냥 때려죽이고 검은 방에 가두어 묶고 개보다 못하게 취급해야 합니까? 그게 민주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건은 교도소의 높은 담 뒤에서 국가에 의해 일어난 살인사건입니다. 공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보시다시피 검찰은 법정에서도 입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이제 언론이 진실을 확인할 차례가 아닐까요?”

기자들의 얼굴에 수긍하는 빛이 보였다. 나는 이미 너무 멀리 가 버렸다. 앞에 거대한 검은 구름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