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⑧] “너도 도둑이지만 윗놈들이 더 도둑이야”

검사의 공소장은 지극히 간단했다. 1982년 4월부터 11월까지 여덟 달 동안 몇 번의 절도행위였다. 피해자들도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재판이 열리고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배신감이 들었다. 대도는 검사를 만나자고 요청했다. 만나는 순간 그를 껴안고 15층 검사실의 창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져 가루가 되고 싶었다. 겉으로 봐주는 척하면서 그를 세상에서 제거할 계획이었다. 검사가 자신을 만나줄 리가 없었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유격훈련 모습. 높이가 건물 15층까지는 안 돼도 훈련병들에겐 공포 그 자체가 되곤 한다. 


30년 전 맡았던 ‘대도 사건’은 나에게 현실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인식을 가지게도 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상적으로 법을 알지만 나는 구체적으로 무대 뒤에서 법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본 것 같다.

정의는 강물같이 흐르지 않는지도 모른다. 악마는 예수에게 이 세상은 자신의 지배하에 있다고 했다. 자기 앞에 무릎을 꿇어야 부와 권력을 주겠다고 했다.

1983년 언론을 들끓게 한 대도 사건의 공소장을 보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좀도둑을 조금 넘어서는 정도라고 할까. 피해자 몇 명도 평범한 사람들이다. 알맹이가 빠져나간 벌레의 빈 껍질 같다고 할까. 함께 잡혀 들어갔던 대도의 장물아비 정씨로 부터 들은 당시의 수사상황은 상황은 이랬다.

1983년경 대도는 오토바이를 타고 반포아파트 옆 한강로를 가다가 매복을 하고 있던 홍 형사팀에 체포됐다. 동숭동에 수사본부가 설치되어 있었다. 대도가 훔친 보석들이 장물아비 정씨의 집에서 압수됐다. 형사 7명이 라면 박스 두개 분량의 압수된 보석과 그 소유자 목록을 만드느라고 밤을 새울 때였다. 그때 경비전화 벨이 울리고 수사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수사과장이 홍 형사에게 뭔가 지시를 하는 것 같았다. 장시후 홍 형사가 대도와 장물아비 정에게 말했다.

“너희들 이제는 살았다. 윗분들이 사건을 줄이라고 하니까. 치안본부장하고 검찰총장한테서 전화가 왔어.”

형사들은 보석목록에서 지시받은 소유자 목록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이미 만들었던 조서들도 없앴다. 그렇게 사건이 축소되어 검찰에 송치됐다.

그 사건이 서울지검의 천 검사에게 배당이 됐다. 천 검사가 대도를 소환해 부드러운 어조로 달랬다.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신분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수사를 해야 하니까 대충 빼고 줄이는 걸 이해하라구. 당신 입장에서도 좋잖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니까.”

옆에 있던 검찰서기가 경찰에서 송치된 서류를 보면서 간단히 조서를 작성하면서 말했다. “너도 도둑이지만 윗놈들이 더 도둑이야. 정말 세상 요지경이야. 우리가 특별 의견서를 만들어 네 구형량을 작게 해 줄테니까 아뭇 소리 말고 기다려.”

검사의 공소장은 지극히 간단했다. 1982년 4월부터 11월까지 여덟 달 동안 몇 번의 절도행위였다. 피해자들도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재판이 열리고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배신감이 들었다. 대도는 검사를 만나자고 요청했다. 만나는 순간 그를 껴안고 15층 검사실의 창을 뚫고 바닥으로 떨어져 가루가 되고 싶었다. 겉으로 봐주는 척하면서 그를 세상에서 제거할 계획이었다. 검사가 자신을 만나줄 리가 없었다.

재판이 끝나고 그가 검찰청의 구치감으로 돌아갈 때였다.우연히 복도 끝 환기창 귀퉁이가 못 대신 구리철사가 감겨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교도관들은 통으로 된 장방형 건물의 외곽만 지켰다. 그는 환풍기를 뜯고 그 구멍으로 탈출했다. 그에게 현상금이 걸리고 경찰과 예비군이 비상경계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장충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그를 지나가던 소년이 보았다. 교도소에서 보았던 소년이었다. 그 소년의 신고로 경찰과 예비군이 출동했다. 그는 쫓기다가 인근주택 2층 목욕탕에 숨었다. 주인이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고 그는 포위됐다. 굉음이 울리면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쨍그렁하고 유리창이 깨지면서 45구경 권총의 총구가 불쑥 나타났다.

“쏘지 마, 자수할게”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시 한번 천둥을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야구방망이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는 욕실 바닥에 널부러졌다. 걸죽한 피가 타일 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앞에 붉은 저녁노을이 보였다.

‘이제 죽는구나’

편안한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 15년 후 피디수첩에서 대도를 담당했던 천 검사가 인터뷰를 하면서 말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1972년 박희태 검사한테서 징역 25년을 구형받은 게 대도입니다. 그런데 1983년 또 도둑질을 했죠. 그러면 구형량이 올라가는 게 검찰의 관례입니다. 그래서 무기징역을 구형했어요. 내가 뭘 잘못했다는 겁니까? 내가 마치 대도와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는 데 정말 답답합니다. 검사는 중형을 구형하는 사람한테는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구태어 원수를 살 필요가 있겠어요? 좀 부드럽게 대해줬다고 해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말하는 건 억지죠. 사실 저는 대도 얼굴도 기억이 안나요. 단순 절도라고 그냥 기소해 버린 건데. 대단한 사건도 아니었는데 뭐가 그리 말들이 많아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가 왜 15층에서 검사를 안고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지려고 마음먹었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검찰총장과 치안본부장을 부릴 수 있는 무대 뒤의 큰 도둑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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