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⑩] “변호사로서 정상이라고 생각합니까?”

“재판장님 제가 지금 제출한 게 뭡니까? 제목을 한번 보시죠. ‘참고자료’라고 쓰지 않았습니까? 참고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닙니까? 그 자료 도로 주세요. 보지 않을 거면 내놓으라구요.” 기자들을 의식한 듯 재판장의 얼굴이 하얗게 됐다. 이윽고 그가 벼르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일단 접수는 해 두지” 그로부터 3주일 후 선고 법정이었다. 재판장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피고인은 재판부가 보기에 근로의욕이 전혀 없습니다. 또 신앙인으로 자처하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보호감호 10년에 처합니다.”(본문 가운데)

‘대도’에 대한 1심의 마지막 공판정이었다. 검사가 300쪽에 해당하는 그에 대한 언론 기사를 ‘재범의 가능성’에 대한 증거로 제출했다. 모두가 그가 인간성을 상실한 전형적인 범죄인이라고 판단하는 내용들이다. 당시 시행되던 사회보호법은 위험성이 있는 존재는 아예 사회에서 쫓아내자는 법률이었다.

18세기 이탈리아에서는 범죄자의 두개골 형태를 연구한 학자가 있다. 그는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인간은 아예 세상에서 제거하자고 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말살하자는 걸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독일 국민 중에서도 장애자 등 열등한 사람들은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여론이 히틀러를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히틀러는 모든 걸 법을 만들어 집행했다. 법대로 한 아이히만 등에게 죄의식은 없었다.

나도 겉으로는 안 그랬지만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모두 청소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밀과 가라지에게 끝까지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리겠다는 성경 속 말에 반발했다. 나는 다만 판사가 하나님도 사양한 그 자리에 앉아 인간을 밀과 가라지로 구별하는 것은 의문이었다. 판사에게 미래를 점치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를 판단하는 재판장이 어떤 인간인가를 알아 보았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해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일찍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재라고 했다. 냉철한 이성과 치밀한 법적 논리를 가진 총명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와 가까운 변호사에게 그에 대해 물어 보았다.

“잡범들의 경우는 재판을 시작하고 몇 분 안에 이미 결론을 내어 버리면 절대로 인식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야. 똑똑한데 단점이라고 하면 힘없는 사람에게는 잔인한 면이 있어.”

그의 동료 판사였던 사람 중의 한 명은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지방대를 나온 판사였다. “한번은 회식이 끝난 자리였어. 그 양반이 술에 취해서 나를 보고 왜 서울법대를 졸업하지도 않고 나온 척 하느냐고 말하는 거야. 기가 막히더라구. 내가 속인 적이 없어.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면 다 똑같은 거지 거기서 다시 서울대 법대 출신을 따지더라구.”

한 변호사로부터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내가 한번 그 재판장 신세를 졌어. 접대를 하겠다고 했지. 그랬더니 사람들을 여러 명 데리고 나와 자기 마음대로 호스티스까지 다 붙이고 술판을 벌였는데 내가 돈을 내는 거였지만 남의 돈이라고 이렇게까지 낭비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솔직히 그 돈이 아까웠어.”

한 여성 변호사는 이렇게 그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 판사님 참 좋은 분이예요. 가서 꼬리를 치면 허허 웃으면서 뼈도 없는 사람처럼 무조건 잘해 줘요. 나는 고맙죠.”

그가 어떤 판사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잘못 걸렸다. 그가 가장 미워하는 인간이 나같은 형태일 것 같았다. 잘난 체하는 놈은 미워하고 못난 놈은 밟아버리는 게 수재들의 숨은 잔인성인 걸 나는 안다. 그는 내게 원인 모를 적대감까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변호를 하면 안 될 사건이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돈을 받고 한 것도 아니었다. 대도를 변호할 변호사는 없었다. 감옥에서만 살아온 그의 참회를 말해줄 증인도 없었다.

나는 참고자료로 그래도 호의적인 칼럼을 몇장 참고자료로 재판장에게 제출했다. 검사는 수백개 낸 데 대한 미약한 대응이라고 할까.

“이보세요 변호인” 법대 위에서 재판장이 싸늘한 눈길을 보내면서 소리쳤다.

“이런 신문기사를 나한테 주는 의도는 뭡니까? 잘 읽어보고 피고인을 풀어주라는 겁니까? 도대체 변호사로서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겁니까?”

검사가 수백개의 기사를 증거자료로 냈는데 그걸 받아들였다. 그걸 보고 풀어주지 말라는 의미였다. 나는 그 반대의 기사를 제출하면 안되는 것일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입을 닫고 인내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변호인 말이죠, 도대체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겁니까?” 그가 다시 내게 물어왔다. 나를 밟아 뭉개기로 작정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확인 사살을 시도했다.

“재판은 증거자료와 법관의 양심에 따라 하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보세요.”

방청석에는 기자들이 뭉개지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내면에서는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절벽앞에 마주 서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재판장에게 뭔가의 판단을 기대한다는 게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다. 쥐도 도망할 곳이 없이 몰면 무는 법이다.

“재판장님 제가 지금 제출한 게 뭡니까? 제목을 한번 보시죠. ‘참고자료’라고 쓰지 않았습니까? 참고하지 않으면 될 거 아닙니까? 그 자료 도로 주세요. 보지 않을 거면 내놓으라구요.”

기자들을 의식한 듯 재판장의 얼굴이 하얗게 됐다. 이윽고 그가 벼르는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일단 접수는 해 두지”

그로부터 3주일 후 선고 법정이었다. 재판장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피고인은 재판부가 보기에 근로의욕이 전혀 없습니다. 또 신앙인으로 자처하지만 믿을 수 없습니다. 보호감호 10년에 처합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법정을 나와 걷고 있었다.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50대쯤의 허름한 졈퍼를 입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그냥 파주에 사는 시민입니다. 재판을 구경하러 왔어요. 힘내세요.”

총명한 판사가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칭찬들을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이 재판을 통해서 뭘 하려고 했지? 그래도 인간을 똥개보다 못하게 취급해도 되느냐고 때려 죽여도 되느냐고를 말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슬펐다.

 

One comment

  1. 글쎄요, 조세형이 엄상익씨 활약도 있고해서인지, 뭐 사회 분위기가 불만이 많아서였는지, 대도에 하물며 말같잖은 의적 비슷한 취급까지 받고 결국은 비교적 약한 처벌을 받고 나왔습니다만, 출소 후의 이 인간 현재 꼬라지 다 알고 계시면서도 이렇게 칼럼 쓰시는건 조세형의 좋은???점 내지 긍정적인???점만을 부각하고 다른 부분은 애써 감쌌던 과거의 변호를 떳떳하게 생각하시는겁니까?

    변호사니깐 범죄자 변호하는건 당연한거지마는, 조세형 사건의 변호가 칼럼을 쓸만큼 가치있었던 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제 기억에는 변호사님은 조세형이 일본서 또 도둑질하다가 걸렸을때 범죄자놈 가지고 사기쳤다고 욕먹으니 사과한 일도 있지 않습니까?
    제 기억이 잘못된겁니까?

    그 잘나신 대도는 2년전에 나이 80도 훨씬 넘어서 또또또또 도둑질하다 잡혀서 또 감방갔는데, 참 그때 그렇게 열심히 변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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