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교도소의 천사들과 악마들

성자같은 교도관도 본 적이 있다. 한 장기수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날 밤이었어요. 무궁화 두 개를 단 교도소 간부가 아무도 없을 때 내 감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식구통 안으로 손을 넣어 내 손을 잡는 거예요. 그 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교도소 안에서는 도대체 말이 안되는 거죠. 왕보다 무서운 교정 간부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거니까요.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그때부터 성경을 보고 신앙을 가지려고 노력했죠.”(본문 중에서) 사진은 멕시코 산타마르타 교도소


나는 변호사를 하면서 40년 가까이 감옥을 드나들었다. 30~40년 전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오후 늦게 접견을 끝내고 돌아올 때쯤 교도소 안 식당에서 밥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면 식욕이 동했다. 교도관 식당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죄수들이 만든 밥과 반찬이다. 교도관들의 넉넉한 인심이었다.

어느 사회나 밀과 가라지같은 인간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교도관이란 직업은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범죄인 중에는 솔직히 짐승 수준으로 내려가 있는 존재도 많았다. 짐승의 귀에는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자기 이익 이외에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교도소 내의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갈 때 마주친 한 젊은 교도관의 이런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사과를 분배하는데 저한테 왜 자기는 작은 사과를 주느냐고 시비를 거는 재소자들이 있어요. 사과 크기가 다 다른데 제가 어떻게 똑같은 크기와 무게의 사과를 줄 수 있습니까? 정말 자기 이외에는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 모여있는 곳이 이 교도소입니다. 자기 용돈을 위해 강도를 한 자들이 온 곳이 여기 아닙니까? 부모도 학교도 사회도 바로잡지 못한 인간을 교도소가 어떻게 바로잡겠어요?”

관념이나 이론과 현장은 달랐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는 악랄한 교도관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교도관이 된 천사들도 많이 봤다.

하얀 눈이 두껍게 덮인 새해 첫날이었다. 청송교도소 수은주가 영하 15도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한 장기수가 작은 독방에 갇힌 채 떨고 있었다. 나무 바닥 틈새로 올라오는 바람이 폭력적이었다. 그 방으로 다가오는 교도관의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철창 사이로 신문지에 싼 뭔가가 툭 떨어졌다. 그 속에는 고기 몇 점이 들어 있었다. 교도관이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몰래 가져다 준 것이다. 냉기를 이겨내게 하는 교도관의 온기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재소자의 아들한테서 편지가 왔다. 예쁜 가방과 운동화를 갖고 싶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감옥 안에 있는 아버지는 가슴이 쓰리는 얼굴로 그 편지를 보고만 있었다. 그 얼마 후 아들에게 가방과 운동화가 우편으로 배달됐다. 한 교도관이 그 사연을 알고 자기 돈으로 문방구를 사서 아이 아버지 이름으로 몰래 보낸 것이다. 그 교도관은 박봉을 털어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성자같은 교도관도 본 적이 있다. 한 장기수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날 밤이었어요. 무궁화 두 개를 단 교도소 간부가 아무도 없을 때 내 감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식구통 안으로 손을 넣어 내 손을 잡는 거예요. 그 분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거예요. 교도소 안에서는 도대체 말이 안되는 거죠. 왕보다 무서운 교정 간부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은 거니까요. 저는 가슴이 뭉클해졌어요. 그때부터 성경을 보고 신앙을 가지려고 노력했죠.”

그런 천사 교도관들을 보면 나는 머리가 숙여졌다. 문제는 교도관들 사이에 사이코패스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소수지만 그들이 먼지를 날리고 진흙탕물을 일으켰다. 그런 존재들은 교도소의 두껍고 높은 담 뒤에서 조직적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교도소의 두껍고 높은 담은 기자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언론의 조명이 가려진 그늘이었다. 나는 그 그늘 속에서 한 죄수의 입을 통해 처참하게 맞아 죽은 한 인간의 죽음을 알게 됐다. 그 죄수는 병적일 정도로 인권문제에 집착하면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변호사님을 보자고 한 건 석방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감옥에 살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무서운 것도 없어요. 전 어떻게든 그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교도소 안에서 인질극 난동까지 부리면서 기자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그의 강한 집착을 보면서 나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건 국가와의 싸움일 수 있었다. 고정관념과 편견의 사회 속에서 역풍이 불 수도 있고 배경도 조직도 없는 개인 변호사는 공중분해될 위험이 있었다. 눈 한 번만 꾹 감으면 적당히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었다. 잘못 입을 열면 성경 속 세례요한같이 목이 잘려 하루밤 술잔치의 노리개 감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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