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일본이 조직적으로 조선땅을 차지할 때 왕족과 대신들은?

일본은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합법적으로 조선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시각 동양척식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던 조선의 왕족과 대신들은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까. 나는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본문에서) 사진은 조선총독부 청사와 주변

나는 1910년경 발행된 일본의 <이바라키신문>에서 ‘우리 일본인은 어떻게 하면 조선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조선은 우리 일본인의 활동무대가 됐다. 조선은 아직 하급수준이다. 그곳에서 일으킬 사업과 개발할 천연자원이 우리 일본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일본 본토에서 땅이 없는 사람도 조선에 가면 지주가 될 수 있다. 일본에서 작은 자본으로 장사를 하려고 하면 여간 힘들지 않지만 조선에서는 작은 돈으로도 활용만 잘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일본 본토의 철도공사에 수천명의 조선인을 썼다. 그들은 품값도 싸고 명령에 순종한다. 조선인들은 돈을 좋아한다. 지폐로 뺨을 쳐도 좋아하는 것이 조선인의 특징이다. 그들은 돈을 보기만 하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답도 예사로 팔아버린다. 조선으로 건너가려는 일본인은 건강과 각오만 있으면 된다. 장사를 하려면 잡화상도 좋고 술집도 좋다. 이자가 비싸니 고리대금업도 무방하다.”

그런 시대의 흐름을 타고 일본의 하층민들이 조선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렵의 풍경을 담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기억 속의 모습을 떠올려 재구성하면 대충 이렇다.

1910년 가을경이었다. 부산역을 출발한 증기기관차가 검은 연기를 힘차게 토해내며 낙동강변을 지날 무렵이었다. 기차 안에는 여러 명의 노동자풍의 일본인들이 앉아 차창으로 흘러가는 경치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한자리의 일본인이 앞에 있는 남자에게 감개무량한 듯 이런 말을 했다.

“엔도상 저 땅과 산들이 다 앞으로 우리 일본사람들의 것이 된단 말이죠?”
“그럼요 히라다상, 이 나라가 모두 우리 대일본제국의 것이 됐는데요. 조선인들은 앞으로 우리의 머슴이 되겠죠.”
“여기는 내가 살던 아오모리보다 날씨도 따뜻하고 땅도 기름지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동양척식회사에 가서 신청을 하면 논과 밭을 알선해 주고 융자도 해준대요.”
“그렇다고 하네요. 그런데 앞으로 우리가 부려야 할 조선사람들은 어떻다고 하던가요?”
“조선인들은 목욕을 할 줄을 몰라 아주 더럽다고 하더라구요. 낮에도 요강을 쓴 다니까 방안에 변소를 둔 셈이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기차 안에 있는 조선인 승객들을 둘러보았다. 때가 낀 흰 옷을 입고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저녁 무렵 그들은 남대문 역에 도착했다. 역 앞의 넓은 길에는 일본인들이 연 가게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들은 넓은 도로를 건너 남산 기슭에 있는 일본인 무료 합숙소를 찾아갔다. 그 집은 무작정 조선으로 건너오는 가난한 일본인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그곳에서 묵은 그들은 다음날 오전 부근에 있는 동양척식회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담당 과장이 그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며칠 전 본토에서 ‘이주규칙’이 발표됐습니다. 조선의 농가로 이주하는 사람에게 매호당 완전히 개간된 6천평의 땅을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미개간지나 조림지가 추가되는 경우에는 3만평이 넘어도 됩니다. 이왕이면 개간을 한다고 하면서 조림지도 달라고 신청하세요. 개간은 조선사람들을 사서 시키면 되니까요. 우리 일본 농민의 빈곤과 파탄을 막아보자는 게 이 사업입니다. 금융문제는 저희가 분양하는 농토 근처의 금융조합에 예금을 한 것으로 통장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일본의 식민정책은 조직적이고 철저했다. 그런 동양척식회사의 정관에 조선측이 논과 밭을 각 5700정보 낸다고 규정되어 있는 사실이 조선에 알려지고 있었다.

불안한 조선지주들이 총독부의 농상공국에 문의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무슨 회사가 생기면서 모든 땅이 거기로 넘어간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국유지만 넘어갑니다. 다만 사유지라도 정확하게 측량해서 신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국유지로 되어 버립니다.”

그런 말을 들은 조선의 지주들에게 일본 상점의 측량기가 불티나게 팔리고 일본인 측량기사들이 바빠졌다.

일본은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합법적으로 조선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시각 동양척식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던 조선의 왕족과 대신들은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까. 나는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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