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검소함이 보물…혼자 간단히 먹을 수 있어도 감사”
아침 겸 점심으로 마트에서 파는 인스턴트 떡국을 먹었다. 물을 부어 전자레인지에서 몇 분만 데우면 완성되는 편한 음식이다. 혼자 밥을 먹어도 괜찮다. 어떤 걸 먹어도 맛이 있고 감사하다.
내 기억의 서랍에는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혼자 밥을 드시는 광경이 스냅사진이 되어 들어있다. 내가 군에 있던 서른살 무렵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사는 역곡의 다가구주택으로 갔었다. 아버지가 혼자 밥을 드시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냉수에 만 밥과 꽁치통조림이 놓여 있었다. 가슴이 찡하고 자식인 내가 잘못하는 것 같은 죄의식이 들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도 가난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공부시키려고 서울로 데려오는 기차 안에서 밥 때가 되자 아들에게 고구마를 한 개 사주고 자신은 막걸리 한잔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손자인 내게 아들인 아버지가 손에 든 고구마를 잡숴보라고 한번 권하지도 않더라고 했다. 그 말에는 때가 되도 밥을 먹지 못하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먹고 산다는 게 참 힘들었던 것 같다.
젊은 시절 내가 선망했던 노인의 모습이 있었다. 고위직 공무원을 했던 분이 정장 차림으로 고급호텔 레스트랑에서 우아하게 혼자 스테이크를 자르는 모습이었다. 잘 익은 고기 위에 고소해 보이는 육즙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하얀 도기 위에서 반짝거리는 포크와 나이프를 쥔 손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나도 나이가 먹으면 그렇게 우아하게 살고 싶었다. 나만 그런 감정은 아닌 것 같다.
박노해 시인의 공장노동자 시절을 보면 인간을 공단 앞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는 계급과 호텔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부류로 나누어 표현하는 걸 봤다.
세월이 흐르고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의 크루즈 여행을 했다. 크루즈 안의 레스트랑은 서양영화에 나오는 최고의 호화판 식사 장면이었다. 하얀 테이블보를 한 식탁위에 꽃과 촛불 그리고 맑고 투명한 와인 글라스들이 정리되어 있고 은빛 나는 포크와 나이프가 정돈되어 있었다. 메뉴판 위에는 전채요리부터 시작해서 수십개의 메뉴가 적혀 있고 정장을 한 서양인 웨이터가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며칠간 스테이크를 먹다가 질려버렸다. 세계적인 셰프가 만들었다는 어떤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다. 나는 식사시간이 되면 그곳으로 가지 않고 햇반과 일회용 김치로 갑판 구석에서 혼자 먹었다. 그게 훨씬 편하고 입에 맞았다. 즐기는 것도 해본 놈이 한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그런 음식문화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마 전 90대 노인이 바닷가 나의 집을 찾아와 하루밤을 묵고 갔다. 특전사령관을 지낸 장군 출신이다. 그는 40대 중령 시절 지은 작은 집에서 지금까지 50년 동안 살고 있다고 했다. 중풍에 걸린 부인을 20년 가량 수발하다가 저세상으로 보내고 지금은 혼자 그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어떻게 먹고 지내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아침에는 누룽지를 끓여 먹어요. 간단하지 뭐. 요즈음은 시장에 가면 반찬을 만들어 파는데 그걸 사다 먹어요. 그리고 저녁이 되면 고구마를 하나씩 먹어요. 그거면 충분해.”
군인 출신인 그의 말을 들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대망>이란 대하소설의 한 페이지가 떠올랐다. 전쟁에 참여하는 장군이 말에서 잠시 내려선 채 간단히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팥밥 한 공기를 물에 말아 말린 고등어 한 토막과 먹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일본의 박물관을 둘러보다가 예전에 시행했던 ‘국민식단’의 모형을 본 적이 있다. 먼저 천황의 식단이 나왔다. 네모진 작은 식판 위에 밥과 된장국 그리고 두 종류의 반찬이 보였다. 그게 천황의 밥상이었다.
그 아래 비슷한 국민식단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다. 소박한 식단을 보면서 말 못할 잔잔한 감동이 가슴속으로 물결쳐 들어왔다.
얼마 전 서울대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서원을 차려 혼자 괴테를 연구하는 노교수의 일상을 유튜브 화면을 통해 본 적이 있다. 공부를 하다가 점심 때가 되자 간단히 떡국을 끓여 먹는 모습이다. 소박한 식사다. 그 정도면 하루 공부하고 일할 에너지가 충분히 나온다고 했다. 노자는 검소함이 보물이라고 했다. 혼자 간단히 먹을 수 있어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