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친일관계 소송 맡아 죽은 영혼들 대리인 되어…

요즈음 역사를 소재로 내가 쓰는 글이 재미가 없다고 충고를 해주는 분도 있다. 나는 많은 독자가 굳이 필요없다. 몇 명이라도 동의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체험한 역사를 글로 남겨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다. 실패도 삶의 한 소중한 부분이듯이 역사의 고난도 귀중하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강원도 동해 집필실에서 필자. 


“나는 요즘 내가 직접 땀 흘려 발견한 역사들을 수필 형태로 남기고 있다”

20대쯤이었을 것이다. 내게 종교가 없을 때였다. 문학이나 글을 보면 성경 구절이 인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양을 갖추려면 성경에 대한 기본상식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30대에 특수한 계기로 성경을 읽게 됐다.

읽자마자 나는 실망했다. 읽으라고 만든 책인지 읽지 말라고 만든 책인지 의문이었다. 일부러 재미없게 만들려고 해도 그렇게까지 만들기 힘들 것 같았다. 관심도 없는 유대인들의 고대역사를 지독히도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게 서술해 놓았다. 내가 그걸 왜 읽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 면면도 한심했다. 우리의 단군같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내를 동생이라고 거짓말하고 권력자에게 바치는 비겁자였다. 그 아들 이삭은 자신이 파놓은 우물을 남들이 심술을 부려 메꾸면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파고 그들이 다시 우물을 메꾸면 또 다른 곳에 피해가서 팠다. 저항할 줄도 모르고 밸도 없는 허약한 인간이었다. 그 아들 야곱은 사기꾼의 전형이었다. 성경에는 그 외에도 동성애가 나오고 아버지와 딸의 간음이 나오고 살인 등 세상의 악은 종류별로 다 그 속에 들어있었다.

유대인들에게 우리의 세종대왕같이 훌륭한 다윗왕은 부하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부하를 죽인 교활한 인간이었다. 솔로몬은 200명이 넘는 첩을 거느린 색에 빠진 임금 같았다. 그들은 침략을 당한 강대국의 노예가 되어 살았다. 그들은 같은 민족인 유대인이 그들을 합병한 나라의 관직을 가져도 민족반역자로 증오하지 않았다. 궁중에 들어가 적국 왕의 술 따르는 종이 돼도 비난하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책인 <모세오경>은 노예가 되어 살던 시절의 부끄러운 얘기들과 도망쳐 방황하던 광야에서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들의 고대사에 충실하다. 나라를 잃고 2000년 동안 세계를 방황하던 유대인들은 그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했다. 그들은 왜 역사의 치부를 조금도 가리지 않고 그렇게 노출시킨 것일까. 그들의 역사는 2000년 동안을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남았다. 그리스 로마의 찬란한 문학이나 철학은 빛이 바랬다. 토스토엡스키, 톨스토이부터 시작해서 헤밍웨이까지의 고전도 도서관에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유대인의 역사를 담은 성경은 매년 전 세계적으로 수만 부가 인쇄되고 세계 어느 호텔의 서랍에도 얌전히 앉아서 사람들이 보기를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나는 우리의 역사책을 달달 외워야만 했다. 고시공부 시절 2차 과목에 국사가 있어 수많은 논문을 공부했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그 안에 우리의 단점이나 부끄러움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나고 우수한 것들만 있었다. 그러고 싶은 것인지 진짜 그랬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불행은 거의 남의 탓이었다. 특히 일본 탓이었다. 정면으로 일본에게 덤벼들지 못하고 친일파라고 딱지를 붙여 모든 책임을 그들에게 돌렸다. 일부 역사학자나 정치가에 의해 가스라이팅이 된 나도 그들이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에게 증오의 돌을 던진 공범이었다.

변호사로서 친일관계 소송을 맡아 죽은 영혼들의 대리인이 되어 법정에 섰다. 그것은 법정에 선 우리의 역사였다. 나는 세상이 만들어 준 틀이 아니라 처음으로 나의 독자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보게 됐다.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했다. 교과서를 만든 학자들이 살짝 열어준 창틈이 아니라 그 시절로 돌아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봤다. 그리고 나는 속아왔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요즈음 내가 직접 땀 흘려 발견한 역사들을 수필 형태로 남기고 있다.

혼자만 알고 버리기에는 아깝기 때문이다. 내 글이 틀릴 수도 있고 남과 다른 시각일 수도 있다.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논문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본 자료들이 어떤 학자의 논문보다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예를 들면 그 시대를 살아온 이병주나 김동인의 문학에는 리얼한 그 시대의 역사와 사람들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그런 문학을 나는 관보나 공문서 아니면 논문보다 더 진실하다고 믿는다.

요즈음 역사를 소재로 내가 쓰는 글이 재미가 없다고 충고를 해주는 분도 있다. 나는 많은 독자가 굳이 필요없다. 몇 명이라도 동의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체험한 역사를 글로 남겨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나누고 싶다. 실패도 삶의 한 소중한 부분이듯이 역사의 고난도 귀중하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끝임없이 역사와 사람들을 단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보다는 성경같이 기록으로 남겨 국민의 정신적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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