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친일논쟁④]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바로잡기’
그리고, 변호사 사무실 창을 통해 본 ‘역사바로잡기’
2024년 6월 2일 오전이다. 먹다 남은 피자 두 조각과 생강 탄산수로 아침을 먹고 있는 데 <연합뉴스> 화면이 뜨고 있다. 하얀 풍선이 도로 위에 내려와 있다. 풍선의 끝에 매달린 물체는 북에서 보낸 오물이라고 했다. 남쪽에서 보낸 전단지에 대한 북의 댓가라고 했다.
내가 전방에서 군 복무 하던 때 휴전선은 남과 북 양측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나오는 이념선전의 잡음같은 소리가 허공에 꽉 찼었다. 아버지 세대에는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했었다. 정말 북에는 공산주의 이념이 있는 것일까. 북경에서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아버지가 인민군 장성 출신이라고 했고 그도 고위관료를 지내기도 했다고 했다. 그에게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얼마나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모택동사상을 배웠느냐고 물었다. 그는 솔직히 전혀 모른다고 했다. 북이 러시아와 멀어지면 공산주의 사상에 관한 서적이 바로 다 없어져 버렸다고 했다. 중국과도 소원해지면 모택동에 관한 책들이 금서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남한의 운동권들이 만든 사상서적을 구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었다.
내가 보기에 공산주의 이념을 아직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한민국에 더 많이 존재하는 것 같다. 변호사를 하면서 나는 직접 그들을 만나기도 했다. 경기도 성남의 뒷골목에 붉은깃발이 날리는 걸 보고 싶다는 여성도 있었다. 운동권의 언더써클에 있던 사람이었다. 내가 만난 한 변호사는 대한민국 곳곳이 붉은깃발로 물들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민주노총 핵심들과 소송을 벌이기도 했었다. 박헌영 동지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땅의 깊은 곳에는 사상의 질긴 뿌리들이 그대로 남아 존재하고 있는 걸 느낀다.
친일파 청산이 다시 거론되던 2007년경 어느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의 법률사무실로 골수 운동권 출신이라는 한 남자가 찾아왔다.
“내가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을 오래 살았는데 당시의 판사나 검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을까요? 여태까지는 안 됐지만 이제 한번 시도해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저는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사상을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후 바로 사면을 단행하고 공안사범들을 석방했다. 민주노동당이 생기고 국회에서 의석을 차지했다. 노무현 대통령시절은 사회 분위기가 더 달라진 것 같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 좌파지식인들의 저서에서 영향을 받아 한국현대사와 대한민국에 대해 수정주의적 관점을 가지게 됐다는 관훈클럽 토론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십니까?” 그의 역사관을 알고 싶어서 물었다.
“이승만은 국내 지주세력과 친일파를 바탕으로 성립된 정권입니다. 김일성 정권은 조선의용군 세력을 중심으로 성립된 역사적 정통성이 강한 정권이죠. 반면에 일본군장교 출신인 박정희의 유신통치는 일본 제국주의자인 조선총독의 무단정치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은 어떻게 봅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통일전쟁으로 봅니다. 우리는 역사적 민족적 지정학적으로 분단되어서는 안됩니다. 부자연스럽게 분단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의 방법으로라도 통일을 하려 했던 불가피한 상황이었죠.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느냐가 중요합니다.”
“해방 후 우리나라를 신탁통치하자는 안이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봅니까?”
“신탁통치를 5년만 받았으면 통일정부를 이룰 가능성이 있었죠. 그런데 이승만과 한민당의 김성수 같은 국내 지주세력 친일파 세력이 분단국가라도 만들어 반쪽의 정권이라도 만들기에 급급했던 거죠. 그 때문에 식민지배가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박정희 같은 일본군 장교출신, 신현확같은 일제 관료출신, 김연수 같은 일제하의 자본가출신을 청산하지 못한 결과죠. 분단의 원죄는 그런 친일파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좌파세력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역사바로잡기를 건의해서 위원회를 만들고 친일파 척결에 나선 게 아닙니까? 그들이 죽었어도 정리를 해야 합니다. 친일파 문제가 지금 광범위하게 일반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친일파를 없애자는 명분이 이미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았습니까. 친일파 안에 사실상 자본가, 관료, 지식인이 다 들어 있어요. 친일파를 없애자는 운동이 곧 파쇼정권의 잔재를 없애버리는 방법이기도 하죠.”
나는 그들이 신현확 전 총리에게 친일파의 프레임을 씌우려는 행위에 대해 법적인 투쟁을 하고 이겼다. 나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전쟁 핵심 부분에 들어가 싸운 셈이다. 그때 상대방측은 계속 파쇼정권의 잔재를 없애자는 주장을 흘러간 노래를 담은 낡은 레코드판 같이 반복했다. 그런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의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직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통성이 없는 나라로 봅니까?” 내가 그에게 물었다.
공산주의자라고 자처하는 그는 이미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세례를 듬뿍 받은 사람이었다. 큰 기업가이고 돈도 있고 사회적 영향력도 있는 것 같았다.
“나같이 나이를 먹은 좌파 퇴물들은 사상적으로 달라졌어요. 해방 후 60년이 흐르고 남한이 세계의 경제강국이 됐어요. 이런 현실을 과거의 혁명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입장이 됐죠. 차라리 남한에 대해 나름대로의 정통성을 인정하자는 의견들이 우리 좌파 속에서도 대두되고 있어요. 그런데 그걸 젊은 좌파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죠.”
나는 그를 통해 노무현 정권에서 벌인 역사바로잡기 운동의 본질을 대충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