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뿌리주식회사···경성방직·삼성·LG

경성방직의 모체가 된 경성직뉴 <출처 경성방직 50년>

10여년 전 미디안광야에서 묵은 적이 있다. 애굽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38년간 살던 붉은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지금도 이따금 낙타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만 보인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던 어느 날 아랍인의 납작한 단층집에 들어가 잠시 쉴 때였다. 보통의 가정집이었다. 양탄자를 바닥에 깐 거실에 우리나라의 LG텔레비젼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가슴이 뿌듯해졌다.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시베리아대륙을 횡단하는 녹색 페인트 칠을 한 낡은 기차를 타고 작은 도시로 갔을 때였다. 공산주의 소련 시절 지은 낡은 호텔에 들어갔다. 문짝도 뒤틀리고 화장실 바닥 타일도 떨어져 나간 날림으로 지은 건물이었다. 방안의 텔레비젼만이 튼튼해 보였다. 그 상표가 ‘LG’였다. 기쁜 마음이 들었다. 텔레비젼 화면에는 한국에서 송출하는 방송들이 그대로 나오고 있었다.

10년 전 남미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도시를 가거나 번화가 곳곳에 ‘삼성’과 ‘LG’ 간판을 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몰라도 사람들은 삼성과 LG라는 회사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나라가 없던 일제시대에도 한국인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회사가 있었다.

1차대전 당시 러시아 영국 등에서 일본에 전쟁물자를 주문하고 유럽 열강의 동남아 수출이 중단되면서 일본의 자본주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일본은 열강이 장악했던 시장도 확보했다. 세계적인 수요에 응하기 위해 일본 재벌들은 조선에 공장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미쓰이재벌의 방직회사가 부산에 설립됐다. 조선은 상당량의 원면을 스스로 생산할 능력이 있고 노동쟁의도 없었다. 그 시절은 방직회사가 첨단산업의 상징이기도 했다.

경성방직 노동자들 <출처 경성방직 50년>

일본 재벌의 진출을 보면서 조선의 경제인들이 ‘조선인 주식회사 설립운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의 힘으로 방직회사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 주동은 경주 최부자로 알려진 최준과 전라도 갑부로 알려진 김성수 집안이었다. 뜻을 같이하는 조선의 부자들이 발기인으로 합류했다. 경주 최부자와 함께 백산무역회사를 하던 안희제, 파주 교하의 대지주 박용희 등이었다. 박용희는 일본유학생 출신이면서도 일본제품은 사용하지 않고 평소에도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는 성품이었다.

발기인 명단에 갑신정변의 주역인 박영효도 있었다. 철종의 사위라는 신분 때문에 작위를 받기는 했지만 민족적 양심과 기개를 잃지 않은 인물이었다. 러시아령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추대할 만큼 민중의 신망도 상당했다. 총독부에서 그를 정계원로로 대접하는 면이 있어 총독부와의 창구역할을 맡길 필요가 있었다. 한글학자 출신 이희승이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조선인의 손으로 만드는 회사인 만큼 그들은 몇명의 부자가 아니라 전 조선 민족의 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조선인 사이에 1인1주 운동을 벌이는 주식의 공개 모집방법을 채택했다. 일반 백성들은 아직 주식이 뭔지 모를 때였다. 발기인들이 전력을 기울여 일반주식 모집에 나섰다.

고창 갑부인 김성수가 전국의 벽지까지 그 취지를 알리며 돌아다녔다. 사람들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식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희사한다는 기분으로 돈을 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는 일반 주주들의 지분이 63.5%였다. 조선민족의 주식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음식점 태화관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발표된 창립취지서의 내용은 이랬다.

‘조선에서 백성들이 옷을 만드는 면직물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조선인은 스스로 면포를 생산하는 것이 조선경제의 독립을 위한 급선무일 것입니다. 우리 발기인들은 경성방직회사를 설립하여 조선의 공업을 발전시키고 조선인에게 일자리를 주고 산업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회사를 창립하는 것입니다.’

경성방직 영등포공장

그 내용은 창립취지서라기보다 ‘조선경제 독립선언서’였다. 경성방직은 영등포에 공장을 신축하고 일본에 직기 100대를 발주했다.

1931년경 일본이 중국으로 쳐들어갔을 때였다. 일본에 적대감을 가진 중국인들은 일본제품을 배척하고 조선인 주식회사인 경성방직의 제품을 선호했다. 올이 굵은 경성방직의 질 좋은 제품들을 중국인들은 더 좋아했다. 조선인 주식회사인 경성방직은 일제 중기에 일본의 재벌들과 당당히 맞서는 재벌그룹의 반열로 올라서게 된다. 그 경성방직은 2024년인 지금까지도 100년 전 발기인이었던 고창김씨 가에 의해 존속하고 있다. 경성방직 삼성 LG 등 대한민국의 주식회사들이 나라의 굳건한 뿌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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