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집이란 이 땅에 잠시 치고 사는 천막 아닐까”

“집이란 결국 이 땅에 잠시 치고 사는 천막이 아닐까. 성경을 보면 우리의 몸도 영혼이 잠시 묵는 텐트라고 했다. 우리는 때가 되면 천막을 거두고 그곳을 향해 가야하는 이 땅의 나그네가 아닐까.”(본문 가운데) 사진은 2021년 12월 타계한 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가 강원도 홍천 캠프나비 천막집에서 독서하는 모습. 박 기자는 93년 생애의 절반 이상을 자연과 벗하며 텐트 생활을 했다. 

 

해변의 쉼터에서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부동산 중개사를 통해 제일 싼 아파트를 알아봤어요. 그랬더니 북평에 있는 열여덟평 아파트가 오천만원에 나와 있더라구요. 그걸 샀죠. 이따금씩 와서 쉬었다 갑니다. 나만의 공간이죠. 비워둬도 관리비가 거의 안 나와요.”

살 줄 아는 사람 같았다. 돈 돈 하면서 미루면 나중은 없는 게 세상일 것 같다.

나는 동해항의 작은 등대가 보이는 언덕에 있는 낡은 2층집을 사서 두 달째 살고 있다. 내부의 자잘한 구멍이 있는 거친 콘크리트 천정과 벽을 흰 페인트로 칠했다. 외벽도 소박하게 한 풀 가라앉힌 노란 칠로 마감을 했다. 천정에도 알전구를 달았다. 나이 먹은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쉽게 갈아끼우기 위해서 한 선택이다. 이 집을 나는 세상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묵는 천막이고 텐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방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재가 되어 바다가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집에 대한 관념이 많이 바뀌었다. 어린 시절 부자가 사는 기와집에서 살고 싶었다. 높은 축대 위에 있는 양옥집도 부러웠다. 봄이 되면 그 집 담장 위로 하얀목련이 등불로 피어나곤 했다. 대학 시절 강남에 신축된 열여덟평 짜리 아파트를 보고 황홀했다. 따뜻하고 온냉수가 나오는 욕조와 깨끗한 변기를 보고 반했다. 그런 아파트에서 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셋방을 전전했다. 여러 번 이사를 한 끝에 서울 강남에 내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를 가졌다. 개발시대 그것은 작은 성취였다. 나는 거기서 멈추기로 했다. 더 가면 집이 과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우연히 만난 한 남자가 자기 집을 자랑하고 싶은데 구경하겠느냐고 물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100층 건물의 중간쯤이 그의 아파트였다. 유명 연예인들과 부자들이 산다고 했다. 그는 친구들한테는 거기 산다는 얘기를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안내로 외부인 출입이 철저히 차단된 그곳으로 들어가 구경했다. 수십억이 든 인테리어의 집이었다. 이태리 대리석을 깐 바닥은 내게는 외국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거대한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커다란 새가 된 느낌이었다. 선불교의 화두 중에 “유리병 안의 새를 상하지 않고 꺼내보라”는 문제가 기억 저편에 남아 있었다. 숨이 막힐 것 같고 불안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전시용 공간이지 편안한 집이 아니었다. 메마르고 공허한 느낌이었다.

호주의 골드코스트 호화저택을 소유한 엄씨의 집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백화점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집안에 요트선착장이 있고 드넓은 바다의 광경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방마다 전면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이상하게 넓은 주방의 싱크대에는 요리를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 집 주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말이죠, 내 가게의 구석에 딸린 작은 방이 훨씬 편해요. 거기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간이침대에서 자면서 평생 물건들을 팔았어요. 이 바닷가의 저택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용이예요. 이 집에서 사는 게 편하지 않아요”

인간은 길들여진 것이 편한 법이다. 집이란 결국 이 땅에 잠시 치고 사는 천막이 아닐까. 성경을 보면 우리의 몸도 영혼이 잠시 묵는 텐트라고 했다. 우리는 때가 되면 천막을 거두고 그곳을 향해 가야하는 이 땅의 나그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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